잡지에서 읽은 시

공무도하/ 조정인

검지 정숙자 2020. 6. 20. 16:46

 

 

  공무도하

 

  조정인

 

 

네 이름은?

남자가 어둠 속에 일어나 담뱃불을 붙였다.

돌아누운 여자는 말이 없다.

 

남자가 뱀 잡으러 가는 때엔 밖에서 빗장이 질러졌다.

 

푸른 독을 삼킨 듯

여자는 갈수록 파리해졌다.

 

며칠 집을 비운 남자가 돌아와 여자를 쓰다듬었다.

네 이름은?

오래전 말을 삼킨 여자는 차고 굳었다.

 

남자는 잠들었고 여자는 빛에 대해 골똘했다. 등 뒤에서 덮쳐든 어둠에 앞이 가려지던, 캄캄한 기억을 거슬러 머루를 따던 곳은 어디쯤일까. 빛에 대한 기억은 늘 거기서 끊겼다.

 

문풍지가 울었다. 두 번째 겨울이 눈알이 언 큰 짐승처럼

문 앞에 왔다.

 

폭설에 묻힌 움집에서 가냘픈 아기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파르스름한 아기를 내려다보던 여자는 아기의 조그맣고 주름진 손을 가만히 감싸쥐었다. 마른 줄 알았던 울음이 흘러나왔다. 젖이 돌았다.

얼음장 아래를 흐르는 개울물처럼 시리고 따뜻한 울음이

오래 아기에게로 흘러들었다.

 

남자가 돌아와 말문을 열었다. 방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툭, 품속에서 꾸러미가 떨어졌다. 여자에게 신길 분홍신이었다.

남자는 그 길로 몸을 돌려 눈밭을 헤맸다.

 

옥아, 여옥···

무수한 여옥은 걷잡을 수 없는 눈발 속으로 흩어졌다.

 

눈은 쌓이고 전설은 묻히고

강은 닫혔다.

 

이듬해 봄, 들판엔 삐비꽃 흰 빛이 범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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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함께』 2020-여름호 <시 1/ 신작시>에서

 * 조정인/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