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석준_말과 사랑의 인간학적...(발췌)/ 백스페이스 : 조은설

검지 정숙자 2020. 6. 18. 03:07

 

 

    백스페이스Backspace

 

    조은설

 

 

  자판을 칠 때 자주 얼크러지는 오타며 문장들

  백스페이스 가볍게 터치하면

  빛의 속도로 달려와 흔적없이 지워준다

  잘못을 탓하거나 구시렁대는 법도 없다

 

  모든 기능이 유용하지만

  실수를 덮어주고 기회를 허락하는 백스페이스

  그에겐 인간이 잃어버린 휴머니티가 있다

 

  크고 작은 실수의 올무에 걸려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사람 보았다

  집을 잃고 친구도 잃고

  남은 삶마저 잃어버린···

 

  나, 뒤돌아보면

  눈물 흔적 많고 상흔도 깊었는데

  일흔 번의 일곱 번, 그보다 더 많이

  품고 용인해 준 나의 백스페이스

 

  이전엔 받은 만큼 마음 빚도 무겁더니

  지나온 삶 접어 지퍼 속에 집어넣고

  스스로 가벼워지는 것도 배우기 시작했다

   -전문-

 

 

  말과 사랑의 인간학적 거리 : 존재의 무게 혹은 타자성(발췌) _ 김석준/ 문학평론가, 시인

  경쟁만을 최상의 논리로 생각하는 후기 산업사회에 그와 같은 마음은 이 세계를 상생의 리듬으로 공명시키는 동시에 나와 다른 타자를 사랑의 힘으로 포획하는 숭고한 정신의 자세라 하겠다. 설령 시인의 그것이 컴퓨터 키보드의 기능키 Backspace에 빗대어 용서와 관용의 정신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찌 그것이 포월의 정신성을 구현하는 대승적인 자세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실수의 올무에 걸려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잃어버린 휴머니티"의 회복 혹은 관용이 만든 용서의 정신. 시인은 그렇게 이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사랑의 원리로 승화시켜가고 있는데, ( ··· ) (p. 시 150 / 론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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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0-5월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작품론>에서

 * 조은설/ 2012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거울 뉴런』

 * 김석준/ 1999년 『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 2001년 『시안』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기침소리』, 평론집 『비평의 예술적 지평』 『의미의 곡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