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공간의 역설/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0. 6. 14. 09:40

 

 

    공간의 역설

 

    정숙자

 

 

  바다일 필요는 없다

  폭포나 강물일 필요도 없다

  최소단위로 압축된 한 방울이면 족하다

 

  그 한 방울의 초점을 열면

  태양과의 합의로 이룬 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생명력 가득한 거리와 창문들, 신전, 정원··· 행인들까지가 옛 모습 그대로다

 

  고통과 고뇌에 포위당한 날

  촛불보다 먼저 꺼져버리고 싶은 날

  밤조차 너무 희어, 눈감아지지 않는 날

  내 아틀란티스 제1문의 열쇠는

  비밀보다 단단히 여민 침묵과 눈물

  그 중심에 있다

 

  검붉은 그 슬픔 허물어- 허물어-

 

  홀로 들어선 아틀란티스

  그리운- 그리운- 그리운 하늘에 가라앉아버린

  그러나 퇴색되지 않은, 그때 그대로의 아틀란티스

  돌멩이도 새들도 내일로 달렸던

  수레바퀴 소리도 씩씩하기만 했던 나의 아틀란티스 

 

  겨우 스물 무렵에 세··· 운···

 

  누군가의 뮤 제국도 거기 그대로 존재할 테지

  누군가가 의식/ 기억하는 한

  사막이든, 바다든 미래조차도 거기 있다지

  절대로- 절대로- 시간은 사라지거나 구겨지지도 아니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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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문예』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열매보다 강한 잎』 등,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