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얼음벽/ 박래은

검지 정숙자 2020. 6. 14. 09:28

 

 

    얼음벽

 

    박래은

 

 

  우물에 인형을 빠뜨렸다 오빠가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물 안에 이끼 낀 돌담, 팔다리를 디딜 때마다 신음소리 미끄러졌다 오빠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불그죽죽한 얼굴이 물 위로 일렁거렸다

 

  인형 담긴 두레박을 당겨 올렸다 오빠의 정수리가 우물 안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끈 잃은 두레박을 던졌다 비가 내렸다 우물 덮개를 덮었다 나무 덮개 틈으로 철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물 푸는 소리가 멈추지 않아 집에 자꾸 우물이 늘어갔다

 

  바람부는 날이면 두레박 부딪치는 소리 마당에 뒹굴었다 고모는 재를 지내자고 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 집은 잠겨버렸다 가족들은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녔다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굿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깨진 두레박을 꿰매며 오빠를 기다렸다 오빠는 헤엄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겨울이 되자 우물 벽으로 얼음이 두꺼워졌다 얼음 낀 이끼가 붉어 보였다 물맛은 시원했지만 나는 비릿한 물고기가 입안에서 헤엄치는 것 같아 말라만 갔다 내 안으로 얼음벽이 두꺼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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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문예』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 박래은/ 2020년 『시와반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