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지 않는 혀
-구마라지바의 유언
최동호
인도의 명문 귀족 출신 구마라지바는 중국의 왕으로부터 십칠 년의 유폐 생활과 치욕을 겪고도 남은 힘을 다해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칠십에 이른 그는 어느 날 열반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나는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이디. 그럼에도 평생 많은 경전을 번역했다. 나의 행을 탓하는 사람은 혹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번역에는 오역이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내 몸이 사라진 후에도 내 혀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다비의 불길 속에서 이상하게도 구마라지바의 혀는 불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고승전에 전한다.
불덩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의 혀가 기록한 거룩한 경전의 말씀들은 허공을 타고 날아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물결쳐 오늘날까지도 불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전문-
▶ 불멸을 찾아서(발췌) _ 홍용희/ 문학평론가
"불멸"의 대상으로 "구마라지바의 혀"가 등장하고 있다. "구마라지바의 혀"는 "불덩이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다비의 불길" 속에서는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모두 허망한 재가 되어버리지만, 그러나 구마라지바의 "혀"는 고스란히 현존한다. 영생의 불멸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하지 않았던가. 생성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그렇다면, 구마라지바의 "혀"가 불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불생不生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구마라지바의 "혀"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실체인 것이다./ 불가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대상은 현상 너머의 본질로서 진여眞如를 가리킨다. 마치 파도가 생기고 없어져도 바다는 불멸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가의 반야심경에서는 이러한 진여眞如의 법에 대해,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진흙소가 물 위를 걸어가지만 물에 녹지 않으며, 나무말이 불 속을 걸어가지만 불에 타지 않는다는 잠언이 자재롭게 구사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이 시편은 현상 너머의 본질, 시대를 넘어서는 형이상, 즉 진여眞如의 불멸에 다감한 목소리로 전언하는 선화禪話라고도 해석된다. (p. 시 47 / 론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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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0-여름호 <신작시 특집/ 해설>에서
* 최동호/ 1976년 시집 『황사바람』으로 시인으로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현대문학』 추천 평론가로 등단,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 『제왕나비』 외 다수, 대한민국예술원회원
* 홍용희/ 1995년 ⟪중앙일보⟫ 평론 부문 당선, 저서 『꽃과 어둠의 산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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