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톱니바퀴처럼/ 김정수

검지 정숙자 2020. 4. 27. 01:39



    톱니바퀴처럼


    김정수



  나 잠깐 도로에 주저앉아 있을래


  정밀하게 돌아가던 바퀴들이 새처럼 급정거하겠지


  유리창은 절대 깨어지지 않아

  사각으로 멈춘 깃털은

  집 안팎의 비명을 투명하게 가둘 뿐이야


  인파들 속에 공업용 기름을 쳐야겠어

  무표정하게 쌓인 먼지들이

  허공을 허무하더군


  각자 할 일을 하는 건 침묵에 대한 모독이야

  석양 근처에서

  아직 도달하지 않은 시간을 되감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반항


  딱 필요한 것들만 돌아다니는 도로에서

  누가 내 불량 무릎을 걷어내고 있어

 

  흐름을 방해하는 구속과 몽상의 그림자는 금방

  제거되지 잠시 잠깐 어긋난 휴식을

  죽을 때까지 솎아내


  붉게 질주하는 도로는 삐걱거리는 톱니처럼 행복해


  한 번도 중독된 적 없는 손이

  고요히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어

    -전문-



  해설> 한 문장: 대체로 우리 인생을 말할 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나날의 리듬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주한 일상에서 잠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 숨가쁜 세상에 대한 익숙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밀하게 돌아가던 바퀴"를 급정거시킨 것과 같아 전혀 낯선 순간이기도 하다. 톱니바퀴처럼 유리창은 절대 깨지지 않고 집 안팎의 비명은 투명하게 그 안에 갇혀 있다. 시인이 묘사하는 무표정한 "인파"나 "먼지들"이나 "허공"은 허무를 쌓아가면서 "아직 도달하지 않은 시간"을 되감는 행위를 은유하고 있다. 도로에는 "딱 필요한 것들만 돌아"다니고,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구속과 몽상의 그림자"는 어느새 지워져버린다. 이렇게 균등화하고 평균화하는 시간은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으로몸을 바꾸어간다. 고유하고 독특한 개성적 양감量感으로 존재해야 할 시간을 등량적으로 분할하는 우리 시대의 가혹한 기율에 대해, 시인은 "잠시 잠깐 어긋난 휴식"을 통해, 고요하게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손길을 통해, 역설적 비판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p. 시 28/ 론 120)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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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홀연, 선잠』에서/ 2020. 4. 26. <시작> 펴냄

   * 김정수/ 1963년 경기 안성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서랍 속의 사막』『하늘로 가는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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