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시가 하는 말 외 1편/ 동시영

검지 정숙자 2020. 4. 26. 13:06



    시가 하는 말 외 1편


    동시영



  시는 사람들이 아직 없었을 때도 있었지

  들꽃들이 노래하고

  천둥이 시를 쓰고 바람도 시를 썼지


  시는 시가 오래된 율법으로 쓰게 하는

  대지를 비추는 신성의 등불이지


  시는 먼지 없는 말

  시 쓰기는 말 닦아내기

  말엔 사람들이 쓰다 두고 간

  빈 방이 가득하고

  무수한 먼지가 달려 있지

  사람들이 억만년이나 쓰다 놓고 간

  말들을 청소해야 해


  말의 벽엔 시가 가득 쓰여 있지

  시는 영원의 가지에 나부끼며

  갈대숲에도 족제비 털에도 스며들었지

  호수가 써 놓고 버들가지가 써 놓았지

  종달새가 써 놓고 귀뚜라미 소리가 써 놓았지

     - 전문 (p.32)



      ----------

     사하라



  무얼 사하라는 것이냐

  죄라도 모두 사하라는 거냐


  사막에 와

  하고픈 말 찾아간다

  머뭇하다가

  그냥 말 못하는 말

  그대로 말 못하고 까맣게 잊혀간다


  쓸리고 쓸리는 사막의 말씀

  사하라 사하라 모두 사하라

  표표한 현현

  여기 해가 지고 있다


  철철 싸르 싸로락 따락

  사막이 따르는 영원주 한 잔

  커이커이 넘겨 보아라

    - 전문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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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일상의 아리아』에서/ 2020. 4. 10. <시와시학> 펴냄

   * 동시영/ 2003년 『다층』등단, 시집 『신이 걸어주는 전화』『십일월의 눈동자』『시간의 카니발』등, 저서『노천명 시와 기호학』『한국 문학과 기호학』『여행에서 문화를 만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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