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옥상/ 마경덕

검지 정숙자 2020. 4. 11. 03:37



    옥상


    마경덕



  도시의 옥상은 매력적이다

  평수에 없는 땅을 배로 늘려 덤으로 준다

  14평에 살아도 사실은 28평인 셈

  하늘에 등기를 마친 건물의 꼭대기는 별도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많은 옥상을 거느린 하늘은

  비와 햇빛과 바람으로 옥상이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한다


  집들의 정수리에서 상추가 자라는 것은

  지붕을 싫어하는 옥상의 버릇 때문

  오랜 습관 탓에 스티로폼 상자에 고추가 달리고 항아리에서 간장이 익는다


  가끔은 쓰레기더미나 폐품을 방치하고 물탱크에

  시신을 감추기도 했지만 그것은 옥상의 잘못이 아니었다


  다닥다닥 달린 창문을 빠져나와

  넥타이를 풀고 잠시 숨을 돌리는 곳, 도시의 숨구멍은

  결국 옥상이다

  사내들은 이곳에 와서 생사를 결정하고 하루를 충전한다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들이나 흘러가는 구름 따위를

  생각의 갈피에 눌러두어도 좋을 것이다


  드물게 추락사도 있었지만

  그들은 깔끔한 옥상의 성격을 몰랐기 때문

  제 평수만 고집하는 옥상은 한 뼘의 허공도 탐내지 않는다

  한 발이라도 제 품을 벗어나면 결코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평수에도 없는 땅에 옥탑방을 들이고

  꼬박꼬박 월세를 챙기는 주인도 가져갈 수 없는 건

  아무도 그 평수를 모르는 탁 트인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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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2012년 刊『글러브 중독자』개정판)에서/ 2020. 3. 25. <상상인> 펴냄

   * 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