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외 1편/ 함기석

검지 정숙자 2020. 4. 9. 03:04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외 1편


    함기석



  어제까지 나는 타임커피숍

  그리하여 모레 나는 모래의 집 또는 귀신의 집

  그리하여 오늘 나는 틀린 센텐스

  스물다섯 개의 눈과 귀가 달린 광기의 디자인하우스

  당신은 지금 틀린 센텐스의 1층 틀린 계단을 오르고 있다

  당신은 왜 무슨 목적으로 당신의 주검을 검시할

  7인의 센텐스에게 목격되는가?


  어서 떠나라 난 위험한 센텐스다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끔찍하게 피살될 수도 있다

  당신이 2층과 3층을 둘러보는 사이

  불길이 솟고 아슬아슬 공중에 걸린 화분들이 떨어져

  당신 머리를 덮칠 것이다

  나는 불가능한 사건이 반드시 터지도록 설계된 다차원 건축물

  당신을 디자인하는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다


  시계는 0시 0분에 정지했는데 바늘은 계속 돌고 돌아

  나는 9시 방향에서 4층을 디자인하고

  당신은 6시 방향으로 회전해 3층 욕실을 둘러보고 있다

  나는 당신에 의해 당신이 피살되도록 설계된

  일곱 개 시공간의 7층 건물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은 지금이라고 읽고 있고

  나는 당신이 그렇게 읽도록 당신을 디자인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떠나라

  이 센텐스에서 검은 모자 쓴 모래 인간이 외출하고 있다

  그사이 나는 계속 틀린 센텐스다

  그사이 나는 계속 엘리베이터를 타원으로 작동시키고

  그사이 나는 계속 당신을 주검의 문양으로 디자인하는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하우스다

  갑자기 덜컹,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수평으로 멈추고


  5층에서 당신의 비명이 울린다

  그 비명을 흡수하며 나는 계속 틀린, 평행 우주 센텐스

  비상구 계단 여기저기 발자국이 찍히고 핏방울은 수평으로 떨어지고

  당신은 계속 이 센텐스를 수직으로 읽느라

  당신은 계속 당신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추론하느라

  5층과 6층 사이로 핏물이 흐르고 당신은 도망치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무형의 피살된 주검이 된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현장을 목격하고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증언할 유일한 목격자로 남지만

  '창에서 비명을 지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처럼 당신은

  영원히 센텐스 속의 삭제된 주어다

  창밖 어둠 저편에 똑같은 건물들이 보이고

  무수한 센텐스 속 당신의 주검을 바라보는 무수한 당신

  당신은 이 불길한 센텐스의 삭제된 마침표고 물음표다


  천천히 돌아보라 발소리 없이 다가오는 내일처럼

  당신의 등 뒤에 권총 쥔 모래 인간이 지구본을 들고 서 있다

  구멍 난 당신의 두개골이다 당신은 언제나

  '뒤틀린 방향과 시간의 굴절 속에서 파괴된 디자인하우스다'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일까지 타임커피숍

  그리하여 모레 세계는 우주는 모래의 집 귀신의 집

  그리하여 나는 오늘 똑바로 틀린 센텐스

    -전문-



      -------

     첫눈



  네가 떠난 밤, 바다는 글자 잃은 시집이다


  등대는 기린 눈망울을 껌벅이며 애처로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누가 맨발로 물 위를 위태롭게 걷는 소리


  바람이 어린 삵처럼 방파제를 넘어와 민박집 방문을 긁어 댄다


  홑이불 잠을 걷고 문을 열면

  첫눈이다 점점이 너의 입술이다 희디흰 숨결들


  죽어서 차고 흰 해풍이 된 물고기들, 공중에서 공중을 놀고


  내 영혼은 지금,

  천천히 해저로 가라앉는 무쇠 닻


  사랑의 입말은 핏물이 다 빠져나간 짐승의 마른 혈관이다


  해저처럼 외로운 잠

  내 알몸처럼 내 살 곁에 누워 바스락거리는 어둠


  새벽녘, 먼 지층으로부터 여진처럼 울려오는 찬 물소리

    -전문-



   -----------------

  * 시집『디자인하우스 센텐스』에서/ 2020. 3. 17. <민음사> 펴냄

  * 함기석/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착란의 돌』『뽈랑 공원』『오렌지 기하학』등, 동시집 『숫자 벌레』『아무래도 수상해』, 동화 『코도둑 비밀탐정대』『황금비 수학동화』『야호 수학이 좋아졌다』등, 시론집 『고독한 대화』, 비평집 『21세기 한국시의 지형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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