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새를 위한 목적어 침대/ 함기석

검지 정숙자 2020. 4. 9. 02:13



    새를 위한 목적어 침대


    함기석



  새가 난다

  쉴 곳을 찾아 도시 상공의 1연을 난다

  다음 문장의 공원으로 날아간다

  도착해 보니 도축장이다

  다음 문장의 놀이터로 날아간다

  도착해 보니 사격장이다

  포수가 총을 들고 서 있다

  새는 놀라 도망친다


  새가 운다

  날개 아픈 새가 쉴 곳이 없어 운다

  병원 창가 2연에서 휠체어 탄 아이 코코가 바라본다

  외로운 새에게 말한다

  외톨이 새 아무야 울지 마! 새가 날면 주어가 날아

  얼룩말이 날고 주전자가 날아

  우체통도 날고 집도 나무도 젖소도 함께 날아


  새가 웃는다

  지친 새가 구름 옆의 3연에서 웃는다

  아이는 새를 위해 선물을 놓는다

  까마득한 공중에 살며시 목적어 침대를 놓는다

  침대 곁에 풍금을 놓고 나팔꽃 화분을 놓는다

  새가 환하게 웃는다

  코코에게 고맙다고 윙크하고는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 달콤한 잠에 빠진다


  새가 잠든 사이

  나팔꽃 속에서 하얀 손이 나와 풍금을 연주한다

  음악에 맞춰 핑 퐁 핑 퐁

  젖소들이 나무들이 바람과 춤추고

  침대 끝에서 새의 꿈이 하얗게 흘러내린다

  새장 같은 아이의 병실 창밖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5연의 연못으로

  방울방울 파문을 그리며 떨어진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함기석 시인은 '언어-사물'의 행복한 조화(정지 마찰)란 거짓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기에 거짓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거나 아예 좌절하기보다는 차라리 둘 사이의 벌어진 틈에 주목하여 언어의 크레바스 위에서 노는 쪽(운동 마찰)을 선택한다. 인용 시에서 쉴 곳을 찾아 도시 상공의 1연을 날던 새는 함기석 특유의 '차원 이동술'을 따라 3차원 현실과 2차원 지면을 넘나든다. "새가 난다/ 쉴 곳을 찾아 도시 상공의 1연을 난다"는 문장이 바로 그것인데 '새가 난다/ 쉴 곳을 찾아 도시 상공의~'까지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실제 3차원'의 어떤 도시 상공을 날아가는 새를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어가 만들어낸 (자동화된) 환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상당수 시인들은 이 '새'를 좀 더 현실감 있는 존재, 새로운 은유나 상징적 의미를 가진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더하고 언어를 조탁한다. 독자 역시 이 조탁에 반응하여 어떤 시를 읽으면서 마치 평소 설명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이 거기 고스란히 재현된 것처럼 놀라며 기뻐하고 또 위로를 얻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놀랍지 않은가? 사물은 거기 없는데, 사물을 대리하는 추상 기호들의 조립으로 우리는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한다. 함기석은 이 부분에서 클로즈업해 들어가기보다는 줌아웃해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쪽을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 재현과 재현을 기술하는 언어에 거리를 두고 좀 더 성찰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1연을 난다"는 문장이 개입하는 순간, 방금 전 새가 날던 풍경이 2차원 종이 위에 기술된 「새를 위한 목적어 침대」라는 시의 1연에 불과함을 뒤늦게 자각하게 되고 언어가 만들어 낸 환영의 진지한 몰입 효과는 깨져 버린다. 이것은 일반적 주문에서 풀려나는 기쁨을 선사하는 행동이기도 하여서 이제 함기석은 사물-언어의 비정합적 상태를 오히려 상상력의 운동 에너지로 전환한다. (p. 시 20/ 론 164-166)  (박상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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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디자인하우스 센텐스』에서/ 2020. 3. 17. <민음사> 펴냄

   * 함기석/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힐베르트 고양이 제로』등, 동시집 『숫자 벌레』『아무래도 수상해』, 동화 『상상력학교』『크로노스 수학탐험대』등, 시론집 『고독한 대화』, 비평집 『21세기 한국시의 지형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