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구현우
창밖의 비를 좋아하지만 비에 젖는 건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너에게
해주려고 한 얘기가 있어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는
오만 색으로 어지러운 화원이 있으니까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안정을 찾는 너에게
어울린다 믿는 풍경이 있어
혀끝이 둔감해지면 입안 가득 맥주를 머금고
어디에선가
이 통화가 계속되지 않는다고
네가 여길 때면 무음이 침묵과 다르다면 난치의 감정이라면
그건 바라지 않아도 젖어드는 일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
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
선유도에서는 볼 수 있을 거야 차마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는 계절
나의 9월은 너의 3월
선유도에서 만나자 선유도에는
직접 본 다음에야 알게 되는 게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네가 자주 입는 꽃무늬원피스에 수놓인 노랑과 파랑
하나는 무난하지만
하나는 네가 그토록 역겨워하는 향기를 품은 꽃이라는 걸
말해줄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후의 복잡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들뜬 채로 한강을 지나가다가
아주
서서히
선유도로 가는 길에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거야
-전문-
해설> 한 문장: 선유도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서로 다른 계절 속에 놓여 있는 너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모종의 희망과 기대가 표명되는 미래의 시공간이다. 선유도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가을옷"이 필요한 너와 네가 입고 있을 "봄옷"을 상상하는 나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기를 소망하는 주체의 마음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무음"이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끝내 사라지지 않는 "난치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선유도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함께 "젖어드는 일"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p. 시 35/ 론 168)
시 쓰기를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중요한 시적 지침서 중 하나로 읽혀온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에는 시인 지망생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를 위한 선배 시인의 섬세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릴케의 편지들은 한 젊은이가 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할 고독에 관한 각별한 강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세상으로부터의 자발적 소외를 선택하고, 스스로가 겪고 있는 내적 고통을 응시하려는 의지야말로 시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꼭 필요한 것은 다만 이것, 고독, 즉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바로 이러한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여섯번째 편지」) 시인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독한 내면 속으로 자주 침잠하는 것은, 세상과 격리될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순수한 실존적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해와 왜곡에 가려진 가려진 자아의 고유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시인은 타인의 배제와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전제로 성립되는 고독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p. 142-143) (강동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