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날 이후 외 1편/ 김원옥

검지 정숙자 2020. 4. 3. 09:56



    그날 외 1편


    김원옥



  엄마와 내가 같은 빛 속에 있지 않은 그 이후

  내 삶의 통로 위에서는

  엄마의 영상을 차마 그릴 수 없었다

  어둠은 내 목을 조이고

  엄마의 환영 속으로 나는 자꾸 빨려 들어가고

  사랑 없는 세상에서

  우리 추억의 나라만 세워지고

  거기는 한없는 밤이 있어

  내 발걸음은 흐느적거렸다

  이미 나에게는 치유란 없었다


  너 엄마 닮았다

  그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살아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나는 들었다 오빠의 그 말에서

  내가 엄마의 존재에 속한다는 것을

  내 운명이 엄마의 운명에 맺어진다는 것을

  거울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반사의 형상에서처럼

  똑같이 나열되는 모습이 있을 뿐이다

  이 영원한 길에 나타나는 모습들에서 나는

  엄마 이상의 어떤 희생적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영속되는 근원에서 나오는 이 그리움은

  엄마의 사진을 꺼내

  거실에 놓게 하였다

  30년 만에

   -전문-



   ------------

   빈 몸으로



  길에 떨어진 매미 한 마리 본다

  이 초겨울에 웬 매미일까

  발끝으로 건드리니 부스스 부서진다

  몸속은 다 어디로 갔나

  지난여름 바위를 깰 만큼

  소리쳐 울던 그 매미인가

  물이란 물은 다 눈물로 빼버리고

  강물 다 가져다

  제 눈물로 쏟아놓고

  강만큼 긴 사랑을 했던가

  울며 생애를 다 살고

  울며 세상을 다 살고

  허물만 바람에 날려 내 앞에

  떨어졌는가

  바람이 되었는가


  울고 또 울며

  저승만큼 먼 사랑을 하고

  껍데기만 남으면

  나

  이승의 빚 다 갚아지나

  바람처럼 어디든 갈 수 있나

  소리로

  울음으로

  빈 몸으로

   -전문-


   --------------

  * 시집『시간과의 동행』에서/ 2020. 3. 20. <시와시학> 펴냄

  * 김원옥/ 서울 출생, 2009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시집『바다의 비망록』, 산문집『먼 데서 오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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