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하다
이수
빗장 풀린 수로 들판에 번지듯 너의 파닥거리는 핏줄 소리 들린다 낯선 길 위 열기에 들뜬 자동차 엔진 소리, 네 눈동자는 구불구불 산맥을 넘고 있지
여러 갈래 붉은 지도의 길, 때로는 연한 때로는 진한 핏빛 명도는 내 피부 속으로 파고들지
곡선이 뱀처럼 사라질 때 직선을 증오했지 흐물흐물 넘어가는 너의 꼬리, 나는 한쪽으로 기우는 배를 타고 있어 오늘의 등을 따라가며 오해를 하지
어디에서도 배음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어 빗방울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벽, 곰팡이 꽃이 너의 세계야, 네 핏줄은 거미줄이고 어디든 연결되어 있어 활주로가 텅 빈 나는 함몰된 하나의 구멍이야
극지를 향해 날아가는 새에게는 주소지가 없어
그래, 그렇게 썩어가면서 우리는 친밀해지는 거야
-전문-
해설> 한 문장: 운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직선은 곡선(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비밀』에서 나오코와 헤이스케의 사랑 이야기는 직선이 아닌 '곡선'에서 출발한다.)보다 덜 피곤할 것 같다. 운전을 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곡선이 뱀처럼 사라질 때 직선을 증오했다는 시인의 말은 창작 과정 속에 발생한 긴장이 풀어진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등을 따라가며 오해를 한다는 말은 "오해"가 아니라 시 찾기의 변주로 읽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길 찾는 행위와 화자의 시 창작이 접합되는 지점에서 드러난 표현이다. 가령, 빗방울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벽을 연상하거나 운전하는 길을 상상하며 "곰팡이 꽃이 너의 세계야, 네 핏줄은 거미줄이고 어디든 연결되어 있어"라고 말하는 표현은 도로 위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화자와 시를 찾고자 애쓰는 화자가 동시에 만나면서 아픈 화자를 부각시킨다. "그렇게 썩어가면서 우리는 친밀"해 지자는 말이 이것을 반증한다. 독자들은 이 시를 통해 "극지를 향해 날아가는 새"의 심리 상태와 이 새(화자)가 지향하는 창작의 뿌리를 셈할 수 있다. (p. 시 73/ 론 97-98) (문종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