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날/ 김원옥

검지 정숙자 2020. 4. 3. 09:39



    그날


    김원옥



  그날

  그날

  깊은 땅에 묻었다


  내가 차마 첫 삽질을 못했는데

  인부들은 땀 흘리며 달구질을 한다


  먼발치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말을 잃은 그가 눈길로 하던 마지막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귓가에 맴도는 이 웅얼거림은

  아직 따라가지 못한 말들인가

  7월의 햇볕 아래 시원한

  이 바람은 그의 선물인가


  드디어

  끝이 없을 것 같은

  그의 삶에 끌려 다닌 일생이라고

  여기던 것들

  저 푸른 하늘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조개구름 사이로 날아간다


  그는 깊은 침묵 속에서

  조개구름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생멸의 거리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리라


  그냥 그렇게 탈상을 하자

     -전문-



  해설> 한 문장: 이번 시집에 묶인 시편들이 시간의 물결 위에서 노 젓는 뱃사공의 표정처럼 의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별한 남편, 이가림 시인에 대한 연민과 사무치는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으리라. 이기림 · 김원옥 부부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불문과 동문으로 만나 결혼한 뒤 프랑스 루앙으로 유학까지 같이 가서 루앙대학에서 나란히 박사과정을 밟았으니까. 루앙 시절에는 폴 발레리(Paul Valery)나 이브 본느프와(Yves Bonnefoy) 같은 프랑스 문인에 매료되어 그들의 시와 시학을 함께 연구했던 문학적 동지였다. 여러 시편들이 5년 전 때이른 계절의 낙엽처럼 떠난 동지이자 반려자였던 그의 영혼을 위무하는 언어일 수밖에 없는 사정 또한 당연하리라.(p. 144)

 「그날」, 병세가 악화되어 눈짓으로 전하려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 여전히 비통하지만 깊은 침묵에 잠긴 그를 홀가분하게 보내 하직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여겼던 그와 나의 삶이 문득 끊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생멸生滅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듯이 이승에 허여받은 날이 길지 않다고 생각하면 긴 이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애써 담담한 표정('그냥 그렇게')을 지어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의미는 운률과 적절히 조응하면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와 '말'은 두운(頭韻)처럼 활용되고 있다. "그날/그를/깊은 땅"에서 '그(기)'로 시작되는 시행들은 제2연에서는 "먼 발치, 멍하니, 말을, 마지막, 말이"처럼 '머(마)'로 시작되는 시행과 대응한다. 여기서 '그/ 깊은 땅'은 화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먼발치' 같은 시어는 화자와의 공간적 거리를 강조시키는 음운들이다. '그'와 '그곳'은 여기 없는 사람이며 여기서 보이지 않는 먼 곳이다. '깊은 땅'에 묻힌 그는 이제 '깊은 침묵'에 빠져있는 존재이다. 깊은 땅에 묻힌 그의 영혼도 깊은 침묵 속에서 구름처럼 흩어져갈 것이다. (p. 시 18/ 론 144. 145) (김창수/ 문학평론가, 인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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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시간과의 동행』에서/ 2020. 3. 20. <시와시학> 펴냄

   * 김원옥/ 서울 출생, 2009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시집『바다의 비망록』, 산문집『먼 데서 오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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