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인연 외 1편/ 신미균

검지 정숙자 2020. 3. 27. 01:59



    인연


    신미균 외 1편



  언제인지도 모르게

  등 뒤에 붙어 들어온

  도깨비바늘


  나랑 같이 살면

  싹도 못 틔운다고

  잘못 따라온 거라고

  조용히 타이르며

  빼어 내는데


  바늘 안쪽에 숨겨진 까끄라기가

  나를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너를 떼어 낸 자리가

  깊다

     -전문-



  -------------

   어떤 바다



  일요일


  남자는 안방에서

  쿨쿨


  여자는 싱크대 앞에서

  달그락달그락


  강아지는 거실 소파에서

  멀뚱멀뚱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서

  삐용삐용


  바닷물도 없는 곳에 있는

  외딴섬들이


  서로들 본체만체

    -전문-


 

   해설> 한 문장: 그러므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위의 시가 힘주어 말하듯이 염려와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기도 하다. 1연의 우연한 연과 그것을 내치고자 하는 2연의 곡진한 타이름, 그럼에도 마지막 연의 고백에서 드러나는 상흔 등은 대부분의 관계 맺음이 처음부터 상처를 예비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케 한다. 문제는 그러한 인연 없이 혼자 사는 일 또한 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럴 때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 테지만 이런 해법은 지극히 일반론적이라 수사修辭로 머물고 마는 경우가 많다. 신미균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대답으로 가장 구체적인 사례는 「어떤 바다」일 것이다. 그는 이 시에서 한가로운 일요일 저마다의 일에 매달린 가족들의 따로 또 같이 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눈여겨볼 것은 이 평화를 지탱하는 것이 "서로를 본체만체"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이런 행동이 가능한 것은 서로에 대한 굳건한 신뢰 덕분이겠지만, 이런 믿음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태도는 존재 자체로서 서로에게 건네는 감사겠다. 이것이 신미균의 시가 내놓는 사랑의 인연을 이어 가는 공존의 조건이다.(p. 시 93. 92/ 론 127) (김영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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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에서/ 2020.3.30. <파란> 펴냄

   * 신미균/ 199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맨홀과 토마토캐첩』『웃는 나무』『웃기는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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