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도심의 저녁식사/ 곽효환

검지 정숙자 2020. 3. 20. 03:18



    도심의 저녁식사


    곽효환



  하오 일곱 시 반,

  아직 어둠이 오지 않은 여름 저녁

  텅 빈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청진동은 오랫동안 재개발 중이고

  창 너머 젖은 하늘 아득한 곳의 타워크레인을 본다

  소금꽃 주렁주렁 열린 소금꽃나무를 꿈꾼 사람

  처녀 용접공에서 해직 노동자가 되고 투사가 된 사람

  계절이 세 번 바뀌어도 끝내 허공 속에 머물고 있는

  이 세상에 있어도 없는 혹은 없어도 있는 사람

  해고는 살인이라며 울먹이는

  전 여당 대선 후보의 눈물엔 감동이 없고

  나는 어느새 식은 국밥의 굳은 기름을 걷어 낸다

  지난여름 영영 떠나간 하얀 그네 얼굴

  일찍 떠난 아버지를 점점 빼닮아가는 누이 얼굴

  주름이 더 늘어  늙수그레해진 창틀에 비친 낯익은 얼굴

  저물녘 텅 빈 식당 한켠에 구겨져 앉은 그림자 하나

  삼켜지지 않는 입안 가득한 밥을 씹는다

  홀로 마주한 밥상의 서걱거리는 밥알들

  씹다 만 깍두기처럼 겉도는 말들

  떠도는 말들과 부유하는 진실을 삼키는

  여름날, 목메는 도심의 저녁식사

     -전문-

 

 

   해설> 한 문장: 끊임없이 재개발되는 세상에도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이 끝없이 건너가야 할 광활한 벌판이 있고, 통과하거나 통과하지 못할 자본의 국경이 있다. 도시의 사무원이자 시인인 곽효환이 빌딩숲 속에서 야생의 자연을 간직한 북방을 계속 호출하는 것은 북방의 역사와 이야기가 지금 이곳의 역사와 이야기이며, 이곳이 바로 북방이기 때문이다. 북방은 우리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 정체성을 아우르는 틀이자 아젠다로서 곽효환의 시가 개척한 현실의 우회로이자 확장된 영토이다.(p. 시 48-49/ 론 163) (김수이/ 문학평론가)

   

     --------------

  * 시집『슬픔의 뼈대』에서/ 초판 2014.1.10./ 2017.8.16. 초판 3쇄 <문학과지성사> 펴냄

  * 곽효환/ 1967년 전북 전주 출생, 1996년《세계일보》 2002년『시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인디오 여인』『지도에 없는 집』, 연구서『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등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 외 1편/ 신미균  (0) 2020.03.27
이발소 그림/ 곽효환  (0) 2020.03.20
스물세 살의 누나 외 1편/ 장재선  (0) 2020.03.19
성덕 방죽에서/ 장재선  (0) 2020.03.18
윤동주 외 1편/ 김남조  (0) 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