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우리 시의 흐름과 과제(발췌)/ 유성호

검지 정숙자 2020. 3. 24. 17:10



    '우리 시의 흐름과 과제'


    유성호



  눈을 돌려보면 시단 일각에서는 최근 발표되는 시편들을 두고, 시를 쉽게 써야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쓸데없이 어려워진 난해성의 포즈를 경계하면서 원활하고도 풍부한 소통을 통해 감동의 질과 폭을 심화하고 확대하는 것은 언어예술로서의 서정시가 반드시 지켜야 할 미덕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시를 '쉽게' 쓰라는 것은 곧 시를 쓰지 말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어버린다. 말하자면 시가 가벼운 감상이나 평이한 소망들을 나열하면서 순조로운 동화同化를 제일의적 목표를 두었을 때, 그것은 '시'라는 오래된 예술적 관습에서의 일탈이요, 폭넓은 의미론적 가능성을 가진 언어예술로서의 명백한 퇴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축이나 생략 혹은 비유나 역설 같은 보편적인 시적 원리 때문에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어려움'은 기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독자들에 의해 풍요롭게 해석되고 향유되어야 하는 '시적인 것'이 된다. 어려운 시가 좋은 시가 아니듯이 쉬운 시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닐 터이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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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함께』 2020-봄호 <우리 시의 당면 과제> 에서

  * 유성호/ 1999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서정의 건축술』『단정한 기억』등, 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