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방죽에서
장재선
한 해의 끝에서
눈이 두 번 내린 후에
누군가 여행을 제안했을 때
겨울 들녘이 바람의 손을 잡는 걸 봤다
남포 들을 적시기 위한
김제 성덕의 방죽 물이
사람을 먹일 물고기를 기르고 있는 것까지
보고 나니
겨울 들판에서 여름 숲을 예비하는
그분의 시계를 만날 수 있었다
한 해를 여밀 기운을 비로소 얻어
여행자끼리 나누는 술잔에
지난 시간의 독기를 담가 씻고
새 날에 새 잔을 건넬 수 있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성덕 방죽'은 그의 고향 김제에 있다. 시인은 한 해의 끝, 눈도 두 번 내린 후에 "겨울 들녘이 바람의 손을 잡는" 풍경을 그려낸다. 더불어 "김제 성덕의 방죽 물"이 "사람을 먹일 물고기"를 기르고 "겨울 들판에서 여름 숲을, 예비하는" 시간도 발견해낸다. 그때 문득 예감처럼 다가온 "그분의 사계"야말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분절해서 과정적 실체로 인식하는 생각을 뛰어넘어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고 또 서로를 가능케 하는 호혜적 공존의 세계임을 알게 해준 것이다. 그러니 "한 해를 여밀 기운"을 얻게 된 시인은 "지난 시간의 독기를 담가 씻고/ 새 날에 새 잔을 건넬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장재선은 한 편의 서정시에서 기억의 원형으로서의 고향 사물과 풍경을 재현한 후, 과거의 기억을 넘어서는 "새 날"의 힘으로 그것들을 바꾸어낸다. 여기에는 기억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시인 자신의 원체험이 진하게 덤겨 있고, 그 원체험이 파생해가는 이야기는 활력과 웃음으로 충일한 "새 날"의 세계를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p. 시 67/ 론 113) (유성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