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승무
정숙
빗물 속 숨은 불끼리 부대끼며 포효하는
여름 소나기
바람은 바람끼리 힘을 모아 빗줄기 타고 흐느적인다
그 거친 춤사위에 젖는 맥문동 줄기
기댈 곳 없는 꽃잎들 한을 쌓으며 몸 흔든다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생존을 위해 흔들리면서 뼈를 키우고 있다
눈물로 애원하는 듯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듯
하늘 찌를 듯 치솟아 오르다가
천둥 번개 소리에 땅으로 조아리며 빌기도 한다
그래,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들은 이미 그걸 깨달은 거지
저 소나기도 이리저리 빗금 그으며 몸 굽히며
필사적으로 뛰어내리는 거지
자존심 세우기엔 이미 너무 지친 모습
그저 열심히 모무, 처용무를 추는 수밖에
비구니보다 더 절실한 어미의 기도는
무능력한 자신을 감추는 일인 걸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여름날 소나기가 오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와 그것에 화답하는 모든 사물들의 모습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 이 시는 김수영의 「풀」과 같은 계열의 시이지만 사물들끼리 조응하는 모습은 김수영의 "풀"보다 더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특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생존을 위해 흔들리면서 뼈를 키우고 있다" 같은 표현과 "저 소나기도 이리저리 빗금 그으며 몸 굽히며/ 필사적으로 뛰어내리는 거지"와 같은 표현은 화자 특유의 언어적 감각에 깊이를 더한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흔들림이 "모무, 처용무와 함께 어머니의 "승무"로 확장되는 지점에선 탄성이 나오게 된다.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음을 "저들은 이미 그걸 깨달은 거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이 갓 등단했을 때에는 그러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 속의 사물들처럼 시적 화자도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리고 때로 세월에 순응하면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표현들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p. 시 88/ 론 117) (박현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