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각을 보았다/ 정진혁

검지 정숙자 2020. 3. 10. 22:24



    각을 보았다


    정진혁



  찔레 향기가 닳아서 흐리다

  어제는 찔레꽃과 뻐꾸기 울음이 이루는 각을 보았다

  그리움은 하얀 표정을 봄볕에 부비며 찔레 순처럼 왔다


  가장 먼 이름 앞으로 몇 개의 형용사가 지나갔다

  어떤 질문으로도 각도를 잴 수 없어서

  자주 하양을 만지작거렸다


  찔레는 여전히 찔레가 되고 있었고

  스무 살을 오래 걸었지만 가시처럼 찔러 댔다

  떠나는 봄밤이 각의 크기만큼 흔들렸다


  뻐억국 울음이 달라붙는 저 각이 자꾸 슬퍼 보였다

  송홧가루처럼 목이 말랐다

 각에서 들려오는 목마름은 길었다


  온몸에 각을 꽂고 길을 걸었다

  찔레꽃이 피어 있는 내내 가슴이 따끔거렸다


  봄에 우는 사람이 많았다



   --------------

  * 시집『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에서/ 2020. 3. 10. <파란> 펴냄

  * 정진혁/ 충북 청주 출생,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간잽이』『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