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선인장 가시가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 강서완

검지 정숙자 2011. 11. 10. 00:53

 

 

    선인장 가시가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

 

      강서완

 

 

   단서는 없었다 어떤 지문도 발자국도 피 한 방울의 흔적도 없이 숨을 거둔

남자는 반듯했다 책상 위에 시든 선인장 하나가 형사의 눈 속 떨림을 밀어냈

다 사건의 목격자로 선인장이 지목되었다

   태평양 솔로몬 마을의 벌목 방법은 나무를 향해 수십 명의 장정이 며칠간  

고함을 쳐대서 시들어 죽게 만드는 것인데, 벡스터* 연구에 의하면 선인장은

두려움으로 말라 비틀린 것, 거짓말탐지기를 장착한 선인장에게 5명의 용의

자를 대질시켰다 그 중 한 명을 보자 탐지기가 심히 흔들렸다 형사들은 그를

집중 추궁했다 사건이 범인의 자백으로 종결될 즈음 선인장 가시는 다시 꼿

꼿해졌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켜, 달빛  몇 점이 정신병원 쇠창살에 달라붙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마르고 있다

 

 

   *미국의 거짓말탐지기 전문가로 식물의 자극과 반응에 대한 연구를 발표.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한 식물은

     인간처럼 기절하거나 실신하여 그 상황에 대한 자기방어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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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시에』2011-여름호 '시에 시'에서

 * 강서완/ 경기도 안성 출생, 2008년『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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