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최정진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
마주친 사람도 있는데 마주치지 않은 사람들로 생각이 가득하다
그를 보는 것이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외면하는 것이 선행도 악행도 아니다
환멸은 차갑고 냉소가 따뜻해서도 아닌데
모르는 사람들과 내렸다 돌아보면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타는 것 같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이라는 제목의 시가 여러 편 있다는 사실 또한 반복되는 시간과 관련이 없지 않다. 일련번호가 없기 때문에 각각의 시편은 제목으로 변별되지 않는다. 시는 변주하며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며 중첩된다. 구절 또한 중첩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p. 73 )<※블로거 참조: 위 시와 같은 제목의 시가 일련번호 없이 8편 산재되어 있음>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에서 최정진은 공들여 인식의 통로를 마련했다. 그곳에서 최초의 시간과 현재가, 실물과 언어가, 어둠과 빛이 만남을 도모한다. 시인은 축적된 기억을 토대로 구축된 정념을 돌보는 대신 정념이 들러붙기 이전 최초의 시간을 꺼내 매 순간 제시한다. 여러 시간이 중첩되고 반복되어 서로 엉킨 곳에서, 그는 무기질 같은 먼지가 되어 어둠을 번역하는 빛을 공유한다./ 어둠과 침묵에 휩싸인 언어 실험실에서 최정진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기억의 틈입을 막고 시제를 현재로 고정해서 언어의 순수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자 했던 까닭은 또한 무엇인가. 공통 체험과 거리를 둔 언어 실험실은 현실의 대안이나 도피처가 아니다. 그는 독자에게 선택과 배제의 순간으로 구성된 낯선 세계에 방문하기를 지속적으로 권유한다. 그 세계를 몽환적이라 여긴다면 그는 신비의 윤리를 제시한 것이다. 그 시간을 혼란스럽게 여긴다면 그는 윤리의 시제를 제시한 것이다. 몰이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제기하고자 한 문제는 언어의, 윤리의, 삶의 기원이다. 저기 두 손을 모은 어두운 형상이 있다. (p. 90-91) (김종훈/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