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남방오색나비의 유통기한/ 이선애

검지 정숙자 2020. 3. 9. 02:52



    남방오색나비의 유통기한


    이선애



  1

  길이 끊어질 듯 너울대며 이어졌다 새색시 손 건네받은 사내, 수줍은 부부는 말이 없었다 딸자식 낳고 살풋한 나날, 사내는 달도 없는 강을 건너 장남만 데리고 북으로 갔다


  누군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순간들

  수예점 낡은 문을 들어설 때마다 하얀 공단 이불깃에 수를 놓던 할머니, 남방오색나비가 날아올랐다 안경 너머 휘둥그레 고운 눈, 몰래 엿본 반짇고리에는 언문혼용체 편지가 날아갈 듯 쌓여 있었다



  2

  사진 속 젊은 지아비는 죽고 김일성대학 교수가 된 장남, 오매불망 그리던 상봉장을 빠져나오며 할머니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다시는 상봉장에 가지 않겠노라고, 북으로부터 몇 차례 요청이 들어왔지만, 할머니는 단호하게 수틀을 내려놓았다 그 후, 남방오색나비도 날지 않았다.


  만남은 그리움의 무덤일 뿐, 할머니는 스스로 이별이 문을 열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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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에서/ 2020. 3. 2. <상상인> 펴냄

  * 이선애/ 2007년『불교문예』신인상 & 2008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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