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이선애
책꽂이 속의 산
깨어지면서 돌아오는 둥근 메아리
끼워 넣고 싶은 소리가 많은 날
지붕 바깥의 어느 바람일까
겉지와 속지 사이 휘몰리는 둥근 능선
낙타는 풀을 씹고 나는 피로 목을 축인다
사라진 과거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묻기도 답하기도 전에 낙타가 온다
무릎을 굽혔다 펼치며
사막을 걷고 또 걷는다
어떤 통증에서는 단맛이 돌고
이마에서 떨어지는 짜라투스트라
생식기를 가진 산들이 겹친다
나뭇가지에서 새로 돋는 나의 갈기들
문득 아득한 소리로 달려오는
붉은 꽃을 피처럼 토하며
낙타는 뜨거운 모래를 산에서 읽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사막에는 길이 없다. 하지만 길이 될 수도 있고, 길이 아니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 "낙타는 풀을 씹고 나는 피로 목을 축"이듯이 없는 길을 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갱신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갱신은 나의 결핍을, 실패를 지독하게 마주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떤 통증에서는 단맛이 돌" 때까지 말이다. 더불어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쉽게 폐기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며, 단순히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적 의미보다는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새로운 발견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비록 지나온 길이 지워진다 한들 지금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자에게 최소한의 자기확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도대체 왜 이처럼 가혹하게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하는가. 도대체 자신의 내면에서 추출하려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시인은 이 세계에 식민지화되려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또 다른 자신을 부정하거나 긍정함으로써 그 세계를 더욱 확장시키고, 이를 통해 보다 근원적인 나에 이르고자 한다. 결국 삶은 저마다 외로운 싸움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심연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걸어 나간다. 때 묻고 낡아가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성찰이며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는 방향성은 세계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p. 시 20/ 론 97-98) (이승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