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1
-목마
박수현
재활용 분리수거 날 누군가 내다 버린 목마를 주워 왔다
멋진 갈기가 날리는 하얀 목마였다
겨우내 거실 한편에 두고
기린초 화분을 올려놓았다
그날부터 사내애인지 계집애인지 모를 한 아이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꿈을 자주 꾸었다
목마의 갈기가 바람에 흔들리면
아이는 한지처럼 얇고 질긴 잠을 벗어놓고
안장 위에서 활짝 웃거나 때론
눈길에 미끄러져
팔목에 깁스를 한 나를 쳐다보곤 하였다
나도 무릎걸음으로 목마에 다가가
아이가 벗어놓은 잠을 몰래 걸쳐보곤 했다
저녁연기 낮게 깔리던 뒷마당에서
장지문 안, 목침을 베고 잠든 할아버지를 바라보거나
무표정한 사람들이 바삐 걸어가는 거리에서
여기가 어딘가 바보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목마 위 아이와 들판을 달린 날엔
달력 속의 숫자에다 붉은 동그라미를 쳐나갔다
겨우내 짧은 햇살 쪽으로 기린초의 모가지가
장뼘만큼 길어졌을 때 아이는 어디론가 떠나갔다
목마의 안장 위 기린초 꽃망울이 터졌다
진한 꽃망울 같은 생각들에 흠씬 몸을 적시며
나는 타이레놀 두 알을 삼킨다
화르락 화르락 뼈 마디마디 꽃들이
부푼다, 샛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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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샌드 페인팅』에서/ 2020. 2. 20. <천년의시작> 펴냄
* 박수현/ 경북 대구 출생, 2003년 계간『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복사뼈를 만지다』, 연합 기행시집『티베트의 초승달』『밍글라바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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