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나던 날
윤석산(尹錫山)
그와 내가 친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같은 시간, 비슷한 일을 하며
이 지상에 있었다는, 그런 인연 때문에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면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고, 때로는 반갑게
때로는 무덤덤하게,
그러나 웃으며 안부를 하곤 했다.
우리가 같은 시간 함께 했던 이 지상을
그가 떠났다는 부음을 접한 저녁
그러나 나는 왠지 쉬 잠이 들 것 같지가 았았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그가 떠나고 없는 지상이 온밤 내 낯설게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가 처음 왔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던 날
어떤 이야기로도 또 무엇으로도 대신하지 못하는
막막함이 이 지상 자욱이 안개비로
잦아지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그러나 세상의 거리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 다만 바쁘게 지나치고 있었다.
-전문-
시인의 산문> 한 문장: 우리는 부모님께서 일곱 남매를 두셨다. 일곱 남매들 중에 둘째 형과 형수가 60을 조금 넘기고 돌아가셨다. 둘째 형네의 아들 둘 중에 큰조카가 미국에 있는 내 여동생, 그러니까 고모에게 가서,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조카가 둘째 형네를 대신해서 우리 남매들 단톡방에 들어와 있다. 때때로 미국에서의 생활을 올리기도 하고, 미국에서 맞는 명절이나, 혼사, 아들딸들(우리에게는 손자, 손녀다)의 학교생활도 올리곤 하며 즐거운 단톡방 운영을 한다.(p-111) /// 시인이 되어 시를 쓴다는 것이 어쩌면 이러한 작은 일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했다. 시단으로부터, 유수한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고, 그래 시단에 그 이름을 내는 것 역시 자신이 시인으로 살아가는 대단한 자부심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비록 작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이 스스로 행복했던, 그런 작다면 작은 내 최근의 한 사건이었다.(p. 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