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 세상
박제천
수천 세기에 걸쳐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보다 더 많은 세기에는
그 많은 짐승들 몸도 한 번씩 가졌으리
나무나 풀, 풍뎅이나 반딧불처럼 살았을 적도 많았으리
깜깜한 바위 속에 나의 보리암 지어놓고
기원하노니
다음 생에는
흘러가는 저 물 속,
구르고 굴러 온몸 깎아내어 반들반들한
차돌
깜깜한 차돌 속에
너랑나랑 껴안은 화석이 되자
하느님도 부처님도 꺼낼 수 없는 무간지옥에서
차돌 세상 살면서
다시는 남의 몸으로 떠다니지 말자.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편을 마름질하는 예술적 영감의 중핵 역시 불가의 연기 사상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다. 첫 머리에 등장하는 "수천 세기에 걸쳐 사람으로 태어나고"는 해탈에 이르지 않으면 환생의 고리는 무한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윤회설을 상상조차 어려운 시간의 크기로 표현한다. 그 뒤를 잇는 "그보다 더 많은 세기에는/ 그 많은 짐승들 몸도 한 번씩 가졌으리/ 나무나 풀, 풍뎅이나 반딧불처럼 살았을 적도 많았으리" 같은 이미지들은, 저 윤회설이 신화적 차원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is)와 접맥될 수밖에 없는 그 필연성의 맥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피어 오른 "나무" "풀" "풍뎅이" "반딧불" 같은 형상들은 우리가 다음 세상에 올 때 지금과 똑같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윤회의 업業에 의해 현생과는 전혀 다른 동 식물의 몸을 걸쳐 입고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또렷하게 예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서 펼쳐진 "차돌세상 살면서/ 다시는 남의 몸으로 떠다니지 말자."는 얼핏 보아 윤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해탈의 경지를 염원하는 이미지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도 부처님도 꺼낼 수 없는 무간지옥에서" 라는 구절은 이 작품이 단선적인 해석으로 마무리될 수 없는 중층적 아이러니의 깊이로 에둘러져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일러준다. "무간지옥"이란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아비지옥阿鼻地獄 또는 무구지옥無救地獄"이라고 하며, "사람이 죽은 뒤 영혼이 이곳에 떨어지면 그 당하는 괴로움이 끊임이 없기에 무간無間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라는 불가의 교의를 살피면, 저 후반부 대목들은 해탈로 표상되는 완결성의 이미지로 해석될 수 없다. 오히려 시집 제목처럼 "풍진 세상"의 무수한 환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차돌"처럼 단단하게, 삶 자체를 허허롭게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풍류인생"을 무한 반복하겠다는 역설적 욕망을 불꽃처럼 간직한 것이리라.(p. 시 61/ 론 95-96) (이찬/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