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이영식
꽃나무 한 그루 심으려 땅을 파보니 폐비닐조각이 끌려 나온다. 차라리 사금파리 조각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죽어서도 날이 선 선비 같은 사금파리에 손이라도 베었으면 좋겠다. 조각조각 이어붙이면 청자이거나 백자항아리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를 정신, 한 조각이 그립다.
요즘 현대시의 밭에도 서정의 탈을 쓴 좀비들이 난무하고 있다. 시인공화국, 파종하듯 뿌려지는 시앗들이 그렇다. 독자에게 외면당해 시집 판매대도 잃고 시인끼리 돌려 읽는 불통의 언어. 뜻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느낌으,로 따라오라는 오만덩어리들.
복사나무 가지가 휘어질 듯 큰 달항아리가 걸린 봄밤이다. 저 은은한 달빛 녹여 누가 시를 쓰고 있는가. 누가 시를 읽고 있는가. 수복문壽福文 밥그릇처럼 따듯한, 사금파리 날처럼 서늘한, 품어 안으면 달덩이처럼 가슴 부풀어 오르는 그런 시집을 만나고 싶다.
시인이 쓰고 독자가 읽어 완성하는 상생의 시 세계로 날고 싶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아우라Aura라는 말은 독일어로 '현전성', '분위기'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예술작품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다. 즉 아우라는 어떤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묘하고도 개성적인 본질 같은 것, 그 작품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듯한 어떤 분위기를 지칭한다. 이 분위기란 발터 벤야민의 정의에 의하면, 유일하고도 아주 먼 것이 아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의 속에는 영적인(Spiritua) 경험이 잠재되어 있다,/ 예술작픔이 만들어내는 영적인 분위기, 벤야민의 설명에 의햐면 이 점은 예술이 원래 지니고 있던 기능, 즉 예술 작품이 신을 예배하고 숭배하는 제의와 의식에 사용되었던 사실에서 발견된다. 최초의 예술 작품은 의식에 사용되었는데 처음에는 마술적인 의식에, 나중에는 종교 의식에 쓰였다. 벤야민은 이와 같은 근원에서 비롯된 예술 작품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러한 제의적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벤야민은 제의적인 예술작품 속에 주관화된 신성이 상징화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예술 작품이 예배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와 신적인 것이 예술작품에 어떤 신비로운 힘을 부여하기 때문에, 작품은 완전히 파악하기 힘든 어떤 '불가촉(das Unnahbare)'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아주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스러운 분위기란 기술복제 시대의 텍스트에서는 발견하기 어렵고 고유한 예술 작품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의 예술의 존재 의의에 대한 강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p. 시-58/ 론113-114) (황치복/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