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놀이터
선혜경
죽어가고 있지?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시소는 대답 없는 독백처럼 땅을 치고 올라왔고
쩍쩍 갈라지는 소리 양옆으로 벌어지는 입꼬리
내 말에 무모히 가담하는 마음
나무가 비웃고 있었던 걸까
그런 게 가능할 수 있을까
시소 밑엔 구덩이가 파여 더 이상 발이 닿지 않았다
어제의 소음들이 울어대고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어,
폐허가
모래의 표면을 뚫고 범람하기 시작하는데
간밤의 악몽이 멸종되어버린다고 해도 우린 매일 잠에 들겠지
빈손으로
구덩이를 파고 파헤치다 보면
추락사는 피할 수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고
여긴, 너무 어두워
빛을 간직하고 싶어 유리잔을 깨뜨렸다
주변이 한낮의 날씨처럼 환해졌다
소년들은 깨진 유리가 동전인 줄 알고 주워갔지만
뒤꿈치에 박힌 유리조각은 빠지지 않았다
늙어버린 고통이 지천에 깔리기도 할까
구덩이를 보면 무릎을 끌어안은 소년을 상상했다
가장 낮게 고여 있는 심장 같아,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입김은 몇 개의 알처럼 빠져나와
당장 책임져야 할 호흡들이 많았고
크게 품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양손잡이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무슨 알을 하려는 듯이 뒤척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찬 꿈을 꿨다
예지몽이었다
구덩이가 더 깊게 파고들었다
-전문-
* 본심: 이대흠
* 예심: 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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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 2020-봄호 <202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에서
* 선혜경/ 1996년 광주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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