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놀이터/ 선혜경

검지 정숙자 2020. 2. 27. 12:43



<202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놀이터


    선혜경



  죽어가고 있지?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시소는 대답 없는 독백처럼 땅을 치고 올라왔고

  쩍쩍 갈라지는 소리 양옆으로 벌어지는 입꼬리

  내 말에 무모히 가담하는 마음

  나무가 비웃고 있었던 걸까

  그런 게 가능할 수 있을까


  시소 밑엔 구덩이가 파여 더 이상 발이 닿지 않았다

  어제의 소음들이 울어대고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어,

  폐허가

  모래의 표면을 뚫고 범람하기 시작하는데


  간밤의 악몽이 멸종되어버린다고 해도 우린 매일 잠에 들겠지

  빈손으로


  구덩이를 파고 파헤치다 보면

  추락사는 피할 수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고


  여긴, 너무 어두워

  빛을 간직하고 싶어 유리잔을 깨뜨렸다

  주변이 한낮의 날씨처럼 환해졌다

  소년들은 깨진 유리가 동전인 줄 알고 주워갔지만

  뒤꿈치에 박힌 유리조각은 빠지지 않았다


  늙어버린 고통이 지천에 깔리기도 할까


  구덩이를 보면 무릎을 끌어안은 소년을 상상했다

  가장 낮게 고여 있는 심장 같아,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입김은 몇 개의 알처럼 빠져나와

  당장 책임져야 할 호흡들이 많았고


  크게 품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양손잡이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무슨 알을 하려는 듯이 뒤척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찬 꿈을 꿨다

  예지몽이었다


  구덩이가 더 깊게 파고들었다

    -전문-



    * 본심: 이대흠

    * 예심: 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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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 2020-봄호 <202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에서

   * 선혜경/ 1996년 광주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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