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빈 의자/ 강신자

검지 정숙자 2020. 2. 24. 23:40



    빈 의자


    강신자



  잔잔한 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마루까지 길게 뻗은 오후

  졸음에 겨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펼친다


  윤아야, 이 나무들 좀 봐

  예쁜 꽃에 풀들도 있네

  나비들이 많기도 하구나

  몇 마리인가 세어 볼까

  하나 둘 셋 넷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다 잠든 사이

  나비들은 순식간에 떼 지어 날아올라

  동쪽바다 가까운 작은 읍 오십천 천변

  유채꽃밭에 내려앉는다


  노랗게 흔들리는 유채꽃

  그 속에 바람이 되고 별이 되고

  강이 되어 흐르고 싶었던

  외로운 소녀가 부옇게 보이고


  온통 샛노란 꽃들이

  어지럽게 피어난 강변에

  아무것도 아닌 채로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다가


  이제야 모든 것 내려놓고

  잎 넓은 나무 그늘 아래

  지친 이 쉬어 가는 빈 의자를 꿈꾸는

  수수한 아낙의 미소 띤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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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0-2월호 <시> 에서

   * 강신자/ 2015년 『한맥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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