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유전자
지인
꽃다발을 들고 동주문학상 시상식에 가는 길
녹색 순환선 전철을 타고 가고 있어요.
차창 밖 하늘가에 황금빛 저녁노을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나는 눈을 감고 철거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어요. 한강 철교를 건너 절두산 성지를 지나
어느 역에서 타셨는지 옆자리에 흰머리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몸을 떨고 계셨어요.
그 파동이 내 몸으로 전해졌지만 그냥 눈을 감고
깜박, 하는 사이 어느 환승역에서 내리셨는지
옆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빈자리를 더듬어 보다가 별처럼 깜박이는
기억 속의 아버지가 다녀가신 걸 알았어요.
윤동주 시인을 닮으신 검은 머리에 검은 교복
흑백사진 속에서 아버지, 6·25사변 때 행방불명되시어
생사도 알 수 없어 가슴에 사무치는 아버지, 지영두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빛나는 별
아버지의 가슴속에서 파동치던 희고 붉은
시의 유전자가 제 핏줄 속에 아프게 흐르고 있어요.
피의 흰 꽃잎 붉은 꽃잎으로 피운 시의 꽃다발을 들고
녹색 순환선 전철을 타고 가고 있어요.
미리내를 건너 북극성을 지나 철거덕거리며
그리운 아버지 별로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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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 2020-봄호 <신작시> 에서
* 지인/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황금물고기』『달어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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