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슬도(瑟島) 관람법/ 권영해

검지 정숙자 2020. 2. 23. 02:41



    슬도瑟島 관람법


    권영해



  일테면 말이다

  슬도에서는

  파도소리를 음악적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아니,

  수평선에 풍덩 떨어져 내리는 달 소리를

  비파소리로 변환해서 들을 줄 아는

  눈치가 있어야 한다


  몸을 부풀렸던 바다가

  숨결을 가다듬고

  아련한 등대불빛이

  한 잔의 생맥주처럼 싸하게 안겨드는

  일몰이 다가오면

  갈매기의 가슴에서는

  둥근 물결의 노래가 생성된다


  성끝마을에서는

  그것이 사랑가이든

  이별가이든, 자장가이든

  바람이 파도를 타는지

  파도가 비파를 타는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해와 달의 운행이

  둥두렷한 망사리를 분만하는 아침마다

  물질하는 해녀가 건져올린 바다는

  다시 섬이 되어 떠오르고

  섬의 맥박이 파도의 현을 퉁기는 소리는

  그리움의 속삭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풍경과 마음의 교응(correspondance)이 아름답게 표현된 시편이다. 슬은 현악기의 하나인데 슬도瑟島는 파도에 쓸려 거문고 소리가 나거나 그 모양이 비파를 닮은 데 유래한 울산 바다에 있는 섬 이름이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유래 못지않게 파도 소리를 음악으로 듣고 달빛을 비파 소리로 변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감각을 회복하라는 주문이다. 무뎌진 감각을 깨우치고 자연과 교감하는 가운데 생의 활력은 살아난다. 1연의 교응 관계는 2연에 이어져 미각으로 확장되고 "갈매기의 가슴"으로 번져난다. 3연의 "섬끝마을"의 평화가 있고 4연에 이르러 해녀들이 이러한 과정에 동참한다. "해와 달의 운행이/ 둥두렷한 망사리를 분만하는 아침"이라는 구절이 말하듯 천지가 생성과 화육化育에 동참하는 광경이 연출된다. 시적 화자는 이같이 모든 생명의 유기적인 연쇄에 이끌리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래서 "섬의 맥박이 파도의 현을 퉁기는 소리"가 "그리움의 속삭임"이 된다. (p. 시-60/ 론151-152) (구모룡/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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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에서/ 2019. 12. 20. <시와표현> 펴냄

  * 권영해/ 경북 예천 출생, 1997년 『현대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유월에 대파꽃을 따다』『봄은 경력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