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양수덕
틈마다 춥다
북극의 두꺼운 밤을 뒤지는 것 같아
낭만적인 창문이라도 달아야겠다
난로의 장작들이 탁 탁 붉은 상징으로 어른거린다
빈자리를 넘나드는 그림자
나는 찻물을 끓이고 두 개의 찻잔을 준비한다
없는 그대에게
행려의 구름을 한껏 담은 차를 따라놓겠다
그대를 푸른 별의 기척이었다고 말하려는
가랑잎을 타고 다니는 나도
미래를 풀어 이어갈 앎맹이의 노련미를 꿈꿀 수 있었으니
따뜻하고 깊은 의도를 우려내는 자가
이제 서로의 어긋난 눈길을 위로하겠지
영정 사진 속에서
웃는 것으로 등을 감추는 그대
및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북극의 두꺼운 밤에는
왕관을 쓴 낙타가 오지 않는다
-전문-
-------------
멀거니, 2
뭉실뭉실, 포동포동한 살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구름
구름은 어디에서나 어깨를 펴고 다닌다
자신을 우습게 보는 녀석에게 번갯불을 붙여 한 방 먹일 수도 있다
나는 가끔 구름의자에 앉아 다 헤진 마음을 달랜다
그런 때 이 바닥은 놀랍게도 조용하고 큰일은 피해 간다
벌레의 세계에서 벌레는
즐거운 모범생, 모두 끔틀꿈틀 죽는 날까지 다리들이 유쾌하다
푸른 우주사전의 의미 있는 깨알 단어다
자연의 교과서를 앞에 두고 크게 자라는 공부를 한다
잎사귀들이 서로 살을 맞대어도 눈총 받지 않고 사는 법을 안다
최후의 마지노선은 누구나 하늘이다
-전문-
--------------
* 시집『새, 블랙박스』에서/ 2020. 2. 11. <상상인> 펴냄
* 양수덕/ 2009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 신은 물고기』『가벼운 집』등, 산문집 『나는 빈둥거리고 싶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슬도(瑟島) 관람법/ 권영해 (0) | 2020.02.23 |
|---|---|
| 바퀴 아래의 생/ 권영해 (0) | 2020.02.23 |
| 부러진 날개를 변호하다 5/ 양수덕 (0) | 2020.02.21 |
| 계단 길/ 윤홍조 (0) | 2020.02.20 |
| 황령산의 봄/ 윤홍조 (0) | 2020.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