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1
이채민
어른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한 사람을 해석하고
아흔아홉 명과 결혼을 하고
밥은 늘 설익어서 엄마가 다녀갔다
서서히 신발이 낮아지고
어른을 탈출하고 싶어졌다
무성 영화 필름처럼
아흔아홉 번의 연기는 계속 돌아갔지만
내가 없고 우리가 희미하게 사라졌다
어른은 날아간 지붕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의 모자를 찾을 수 없는
열심히 날아가버린
날아가고 있는
어른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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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다우강의 기도
누구를 위한 고해입니까
내 젖줄을 피로 물들게 한 당신의 의심은
백 년을 걸어온 여행자의 배낭 속에서 아직도
단단하게 흐르는데
성벽을 넘은 반란 같은 바람이
끊어진 내 동맥을 위문하고 흐느끼고 있음을 듣습니다
왕이여
이제는 무릎을 꿇으소서
겁 많은 당신의 목쉰 울음을
내가 들었습니다
사위어가는 마지막 촛불이 밝아지듯
당신의 진한 키스가 카를교 위에 환히 떠 있음을
내가 보았습니다
왕이여
스며드는 나쁜 생각일랑 표피를 찢어내고
아침 해 같은 기도에 머무소서
당신을 위한 마지막 고해를
죽은 꽃잎에 흩뿌려
어느 하루 하얀 낮잠으로 피게 하소서
-전문-
* 체코의 강. 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고해성사를 듣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다문 성 네포무크와 왕비를 이 강물에 던져 죽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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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오답이 출렁이는 저 무성함』에서/ 2019. 12. 15. <미네르바> 펴냄
* 이채민/ 충남 논산 출생,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빛의 뿌리』 『동백을 뒤적이다』, 동인지『빠져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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