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강순
겨울엔 발이 폭폭 빠지는 꿈을 꿉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에요)
추위가 온통 감옥인 들판에
푹푹 발자국 찍고
가난한 연인을 구출합니다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와요)
독재자의 외투와 털모자를 벗겨 옵니다
로힝야족 난민에게 꿈을 빌려 줍니다
(밤을 온통 초록색으로 칠했어요)
밤을 지키는 달의 임무는
그림자로 내 발자국을 덮는 일
고단한 것들은 입조차 얼었습니다
(문장들의 초록을 뜯어먹고 자라나요)
어둠은 밤이 쓴 격려사
외딴 별처럼 난해합니다
(초록은 꿈의 껍질 색이에요)
어둠을 읽어내는 일은
언 땅 위에 발자국 찍는 일
밤의 역사는 좌표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문장들이 밤새 알을 품고 있어요)
내가 걸으면 달도 바빠집니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밤을 휘저어
우듬지가 산덩이만 해졌습니다
(꿈에도 척추가 생겨나요)
나믜 발은 지구를 사랑하느라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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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에서/ 2020. 2.15. <파란> 펴냄
* 강순/ 제주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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