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겨울나무/ 강순

검지 정숙자 2020. 2. 16. 03:51



    겨울나무


    강순



  겨울엔 발이 폭폭 빠지는 꿈을 꿉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에요)


  추위가 온통 감옥인 들판에

  푹푹 발자국 찍고

  가난한 연인을 구출합니다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와요)


  독재자의 외투와 털모자를 벗겨 옵니다

  로힝야족 난민에게 꿈을 빌려 줍니다


  (밤을 온통 초록색으로 칠했어요)


  밤을 지키는 달의 임무는

  그림자로 내 발자국을 덮는 일

  고단한 것들은 입조차 얼었습니다


  (문장들의 초록을 뜯어먹고 자라나요)


  어둠은 밤이 쓴 격려사

  외딴 별처럼 난해합니다


  (초록은 꿈의 껍질 색이에요)


  어둠을 읽어내는 일은

  언 땅 위에 발자국 찍는 일

  밤의 역사는 좌표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문장들이 밤새 알을 품고 있어요)


  내가 걸으면 달도 바빠집니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밤을 휘저어

  우듬지가 산덩이만 해졌습니다


  (꿈에도 척추가 생겨나요)


  나믜 발은 지구를 사랑하느라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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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에서/ 2020. 2.15. <파란> 펴냄

   * 강순/ 제주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