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시계 혹은 사계(四季)/ 김보숙

검지 정숙자 2020. 2. 11. 23:48



    시계 혹은 사계四季


    김보숙



  은혜미용실 앞에서 밤을 굽는 할아버지가 이야기하시네. 저 미용실 젊은이 11시간째 서서 일하고 있네. 은혜미용실 안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가 이야기하네. 저 밤 굽는 할아버지 11시간째 앉아서 밤을 굽고 계시에. 젊은이와 할아버지는 서로의 시계이네. 서로의 움직임을 보고 시간을 알아내네. 은혜미용실 앞에 있는 벚나무가 이야기하네. 저 미용실 안에 있는 봄 화분 11시간째 앉아서 새싹을 움트고 있네. 은혜미용실 안에 있는 봄 화분이 이야기하네. 저 벚나무 11시간째 서서 꽃봉오리에 힘을 주고 있네. 봄 화분과 벚나무는 서로의 사계四季이네.

    -전문-



  해설> 한 문장: 은혜미용실 안팎으로 나뉜 두 공간은 마치 자신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의 모습을 통해 결국 자신의 세계를 성찰한다. 서로의 공간은 서로를 비추고, 그렇게 서로의 세계는 서로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성찰한다. '미용실 안/밖, 미용사 젊은이/ 밤굽는 할아버지, 봄 화분/ 벚나무' 등 서로 마주하는 대상과 공간이 공유하면서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것은 '11시간'이란 물리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각 성장하고 있는 생명의 극적 순간들이다. 이렇게 미용실 안팎의 세계는, "봄 화분과 벚나무는 서로의 사계"란, 신비한 관계를 형성한다. (p. 시-37/ 론-129) (고명철/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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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절름발이 고양이 튀튀』에서/ 2019.12. 5. <리토피아> 펴냄

  * 김보숙/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