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조우연
길고 긴 고독에 적응하기 위해
기린은 긴 목을 갖게 되었다
고래는 지독한 고독에 살아남기 위해
뭍을 버리고 심해로 들어가
수억 년 동안 잠수 중이다
강대나무가 적막하다
주목은 산정에서 고독과 싸우다 선 채로 죽는 진화를 택했을 것이다
아직 가닿지 못한
달팽이의 더딘 쓸쓸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인류는 나를 항거했다
고독에 잡히지 않으려 꼬리를 도려내고
날개를 잘라 바람 속 공허에 맞섰다
그러나 끝내 고독에 순응하여 거대 독무덤에
무진장 고독하게 묻힌 조상이 있었다
다윈, 저녁을 혼자 걷는 그의 직립보행은 퇴행을 걷고 있었을 것이며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고흐는 고독에게 총을 겨누고 죽었지만
그 남자의 고독은 무한 복제되고 있다
지금 뭐해, 비, 비가 오네, 라든지
아니, 별 별일 아니고, 달이 떴는데, 그게, 그냥, 참, 그래서…… 등등
우리가 저녁밥을 혼자 먹으며
퇴화 중인 언어를 더듬거릴 때
아, 이런, 고독사의 전성시대
인류 출현 이래
고독은 보란듯이 전화 중인 것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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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2020-2월호 <신작시 # 1> 에서
* 조우연/ 2016년《충북작가》로 등단, 시집 『폭우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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