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기원
전기철
배가 아파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어 보더니 칼이 들었단다. 청진기로 칼이 들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당신의 뱃속에 들어 있는 칼에서 소리가 난단다. 그럼 칼이 뱃속을 도려내는 소리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뱃속에서 칼이 구시렁거리는 소리란다. 칼을 삼킨 적이 없다고 항의해 보지만 칼이 뱃속에서 움텄단다. 어떻게 칼이 뱃속에서 움틀 수가 있느냐고 힐난해도 의사는 표정 없는 독재자처럼 비웃을 뿐이다. 괴로운 세상을 삼켜 버리면 칼이 석순처럼 자란단다. 칼은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가지를 뻗고 있으니 삼킨 문장을 토해내지 않으면 위태롭단다. 그동안 삼킨 말이 얼마나 자랐을까. 나는 술을 마셔 갖은 풍경을 토해 보려 해도 칼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너무 오래 세상을 견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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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집『풍경, 아카이브』에서/ 2019. 5. 30. <작가> 펴냄
* 전기철/ 1954년 전남 장흥 출생, 1988년 『심상』& 1992년 『계간 문예』(서울신문)를 통해 등단, 시집 『풍경의 위독』『아인슈타인의 달팽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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