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 집/ 장순금

검지 정숙자 2020. 2. 7. 02:34



    그 집


    장순금



  손만 살짝 갖다 대도 아픈 집

  살이 쓰리고 금방 부어오르는 관절처럼

  바람만 불어도 어깨가 젖고 먼 기척에도 흔들리는

  뒤뜰에는 무화과도 익고 빨간 연시 같은 소망도 익고

  달빛이 읽는 문장도 익어갔던


  별이 된 그 집


  박제된 물방울이 관절에 고인

  책에서 나를 꺼내 밀봉한 채 수장한 방

  찰랑찰랑 입과 코로 죽음을 삼켰다 뱉은


  그 집에 한쪽 발을 담그고 뉘엿뉘엿 백 년을 건어온


  마구 자란 잡초처럼 놓아버린 소망이 풍문으로 돌아다녀

  책으로 깊어진 방, 깊어 냉골이 된 방


  끝나지 않은 문장이 불쑥불쑥 젖은 얼굴로 들어오는

  그 집에 아직 내가 있어

  혼자 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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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얼마나 많은 물이 순정한 시간을 살까』에서/ 2020. 1. 23. <시산맥사> 펴냄

  * 장순금/ 부산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햇빛 비타민』『골방은 하늘과 가깝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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