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한 짝만 잃어버리는 생/ 신현락

검지 정숙자 2020. 2. 4. 01:49



    한 짝만 잃어버리는 생


    신현락



  소년이 서 있다

  곧 비가 올 텐데 신발 한 짝을 잃었다고

  풀숲을 뒤지다가 다시 울다가


  흙바람 속에서

  같이 놀던 동무들 모두 돌아간 뒤

  운동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소년이 서 있다

  돌아보는 발자국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소년의 얼굴 위로

  체념한 표정이 떠오르다 지워진다


  남아있는 신발 한 짝을 들고

  낯선 상실의 예감이 원경으로 펼쳐진

  생의 분지 한가운데


  소년이 서 있다

  여기에 없는 허전한 눈동자로

  어디선가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그 한 짝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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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 2019-겨울호 <신작시> 에서

   * 신현락/ 1992년《충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그리고 어떤 묘비는 나비의 죽음만 기록한다』외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