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오영미
자개 화장대는 잠들기에는 지나치게 으스스했지만 마님은 찌코슈가 거기에서 자야 한다고 부득부득 우겼다. 마른 장미 냄새를 풍기는 태평양을 이불 삼아, 유달리 눈동자가 예쁜 청개구리를 베개 삼아 찌코슈는 온몸을 둥글게 말아야만 했다.
마님은 낡고 망가져 이제는 수리가 불가능해진 아가씨를 품이 넉넉한 주머니 속에 숨겨 두었다. 그 대신 찌코슈를 마님의 통통하고 주름진 왼손 약지에 보란 듯이 끼우고는 이웃집으로 룰루랄라 마실을 갔다.
딸이 시인이라면서? 그나저나 딸이 이제 삼십대 아닌가? 한물갔네, 갔어. 여자애를 쓸데없이 오래 공부시켜서 그런 거야.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아주 질색하는 법이거든.
딸년 대신 찌코슈, 아름다운 너를 끼우면 우리 집 뒤뜰에 열린 사과대추 하나 맛보겠다고 개처럼 빌빌거리는 동네 여편네들에게 으스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틀렸어. 틀렸다고!
마님의 푸념을 들으며 찌코슈는 저녁 식탁에 오를 닭모가지를 일부러 어설프게 잘랐다. 화장대에서 잠들게 된 이후 하얗게 세어버린 찌코슈의 정수리로, 바싹 말라 버린 입안으로, 코딱지 쌓인 콧구멍 안으로 절반의 성대를 잃어버린 죽음이 푸드득푸드득 떨어졌다.
아가씨의 조그마한 입안에 설익은 닭 가슴살을 욱여넣으며 마님이 낄낄 흐느끼는 동안 찌코슈는 오랜만에 직립할 수 있었고 그 충격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척추가 부러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가씨의 얼굴이 노랗게 뜬 사이. 아가씨의 얼굴만큼인나 노랗고 냄새나는 땀이 자신의 얼굴에서 줄줄 흐른다는 사실에 마님이 분노하는 동안 찌코슈는 정수리와 입안과 콧구멍 안에 꼭꼭 숨어 아아, 인지 우우, 인지 모를 비명을 내지르는 죽음을 마님과 아가씨를 향해 벼룩처럼 훌훌, 털어 내었다.
-전문-
*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애니메이션 「The End Evangelion」의 앤딩 곡 제목
--------------
* 시집『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에서/ 2020. 1. 30. <파란> 펴냄
* 오영미/ 1987년 충북 영동 출생, 2017년『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반가사유상 외 1편/ 홍우식 (0) | 2020.02.06 |
|---|---|
| 침묵과 노는 날들/ 홍우식 (0) | 2020.02.06 |
| 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 오영미 (0) | 2020.02.04 |
| 링에서 살아남는 법_야수들과 동거하기 1/ 최승철 (0) | 2020.02.03 |
| 시티 스토리 2 (City Story 2 )/ 최승철 (0) | 2020.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