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 오영미

검지 정숙자 2020. 2. 4. 00:54



    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


    오영미



  있지, 언니의 크고 둥근 머리는 씨 없는 수박처럼 달고 순한 걸 나는 언니의 머리가 죄 닳아서 얇고 흰 목덜미만 남을 때까지 쪽쪽 빨고 말 테야 그러니까 언니, 조금만 더 가까이 와 봐 언니를 좀 더 꼼꼼하게 핥고 싶어 언니의 머리에 내 전부를 와르르 깔깔 묻히고 싶단 말이야 오늘은 말이지, 언니의 예쁜 콧구멍에 내 말캉한 혀를 밀어 넣은 뒤 아주 격렬하게 쑤셔 볼까 해 벌써부터 흥분되지 않아? 나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 버렸는 걸 정말이지, 언니를 향한 나의 사랑은 노릇노릇 구워진 할루미 치즈 같아!


  언니, 어째서 날 피하는 거야? 뭐라고? 이 이상 머리가 닳아 없어지면 곤란하다고? 언니만큼은, 정말 언니만큼은 그 새끼들과는 달리 날 위해 무한하게 열려 있는 결말인 줄 알았는데! 언니도 그 새끼들처럼 영영 닫혀 있는 결말이었을 줄이야! 항상 이런 식이지 언제나 이런 식이야! 그런데 언니, 내가 정말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건데 고작 머리 하나 없어지는 게 그렇게나 큰일이야? 아니지, 말은 똑바로 해야겠다 언니의 머리가 없어지기는 왜 없어져? 내 혀끝에, 수많은 돌기들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새겨지는 거라구!


  언니, 듣고는 있니? 이 개만도 못한 인간아 이럴 거면 처음부터 나에게 다가오지 말았어야지 내가 구석에 처박혀 엉엉 울고 있늘 때 왜 나를 향해 웃어 주었어? 어째서 네  대가리를 상냥하게 들이밀었어? 됐다 됐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미칠 듯이 배가 고프다 닭갈비나 먹으러 가야겠어…… 아이고 순진한 언니 같으니, 안심하며 한숨 내쉬는 저 꼬락서니 좀 봐라!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니? 나 말이야, 닭갈비로 잔뜩 부른 배를 뾰족한 바늘로 푹, 찔러 버릴 거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흰긴수염고래의 부패한 시체처럼 펑, 터져 버릴 거라구! 사방으로 끈질긴 냄새를 풍기며 나는 기어코 언니를 가리킬 테야 저 사람이 나를 죽인 범인이라고 울부짖으며 아주 즐겁게 죽어 갈테야


  그러니까 언니, 살고 싶으면 언니의 머리를 나에게 당장 내줘, 전부 내줘, 언니를 향한 나의 사랑이 사방으로 바삭바삭 부서지게 해 줘

     -전문-



  해설> 한 문장: 너무 오래 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 이외에 다른 관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나에게 애정을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가해자의 자리에 설 때만이 욕망의 주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용 시에서도 여성 화자는 자신이 구석에서 울고 있을 때 위로해 주었던 '언니'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고백하며 상대의 머리를 닳아 없어지도록 핥아서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신체로 흡수해 버리기를 욕망한다. 사랑과 욕망, 관계의 '건강한 상호작용'을 배워 본 적 없는 여성 화자는 마치 가학과 피학이라는 관계가 아니고서는 사랑을 감각할 수 없는 불구의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비교적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자유로운 동성과의 관계 혹은 두 명의 분열된 자아가 등장하는 시편들에서는 왜곡된 방식으로 사랑에 몰두하며, 죽음을 충동질하는 일그러진 욕망을 과시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이상한 흥분과 활력, 연극적 과잉의 태도가 배어 나온다.

  인용 시에서도 결국 자신의 욕망이 좌절될 것임을 예감할 때, 여성 화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닭갈비를 잔뜩 먹고 자신의 배를 터뜨려 시체가 됨으로써 자기 죽음의 원인이 '언니'였음을 고발하겠다는 위협이다. 이번에는 거식증이 아니라 폿식증을 발동시켜 좌절된 욕망을 음식으로 대체하고 끝내 그런 자기를 파괴하여 자신을 받아 주지 않은 타인을 벌하고 욕망의 좌절을 보상받겠다는 것이다. 혐오라는 에너지를 일종의 화폐처럼 계산한다면, 남성적 질서의 물화된 대상으로 취급받으며 오랜 기간 혐오에 시달리던 여성 화자가 자신에게 축적된 혐오 화폐를 만만한 애정 관계의 타인이나 자기보다 약한 대상에게 굴절하여 발권합으로써 '과격한 주체화의 열정'을 드러낸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혐오의 대상으로 수치심에 시달리던 여성은 그것 말고는 관계를 지속할 다른 자원을 갖지 못하여 자신을 망가뜨린 바로 그 감정에 의존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그리고는 혐오에 기대어서만 주체로 설 수 있는 것이다.(p. 시 54-55/ 론 128-129) (박상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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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에서/ 2020. 1. 30. <파란> 펴냄

  * 오영미/ 1987년 충북 영동 출생, 2017년『시와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