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묵언, 아기 진딧물/ 이명

검지 정숙자 2020. 1. 31. 03:08



    묵언, 아기 진딧물


    이명



  극락전 옆 개울가 바위에 앉아 있는데

  팔에 무언가 툭툭 떨어진다

  연둣빛 투명한 점들 자세히 보니

  막 세상에 나온 진딧물 새끼들이다

  가문비나무 여린 잎에 붙은 어미가

  새끼들을 분만 중이다

  내 팔뚝에 떨어진 새끼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팔을 흔들어도 입김을 세게 불어도 그냥 기어오른다

  내 팔뚝이 제 길인 줄 아는 모양이다

  선가귀감에는 생각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 했는데

  저 천연덕스러운 걸음걸이

  극락전 아미타 부처를 기웃거리던

  어미의 경지가 그러했는지

  앞마당에 빽빽이 들어선 등불을 향하고 있다

  아미타 부처의 미소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생각을 놓고 있던 내가

  막 태어난 진딧물 새끼에게서 한 수 배우고 있다

  장난기어린 부처님이 흔들어대는 팔뚝 위를

  무작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몸으로 기어 올라오는 갓 난 진딧물을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전문-



  시인의 산문> 한 문장: 오랜 전통의 인도 브라만교는 옛날부터 인생을 4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것을 아슈라마라 했다. 이들은 이를 일종의 종교적 의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습에 따르면 삶을 4단계로 나누는데 범행기梵行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流行期로 구분한다.범행기梵行期는 태어나서 25세까지의 청년기를 말하며 학문을 공부하고 세상을 배우는(카-마) 학습시기를 말하고, 가주기家住期는 26세부터 50세까지 장년기를 말하며 재산을 모아 가정을 이뤄 식솔을 부양하고(아르타)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시기를 말한다. 임서기林棲期는 51세부터 75세까지 노년기를 말하며 집을 떠나 산으로 은둔하여 명상의 생활을 하며(다르마)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유행기流行期유랑기流浪期라고도 하는데 이는 76세 이후 졸년을 말하며 무소유의 경지에서 속세를 초탈하는(모크샤) 시기라고 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별로 지켜지지 않는 도그마이긴 하지만 이 무렵 이 아슈라마 원칙의 근간이 내 사고의 근저에 깔려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오래된 문명권의 통찰 하나가 부지불식간에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인도의 관습에 따르면 나는 3단계인 임서기林棲期에 들어와 있다.이 임서기林棲期는 어느 정도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자식들도 다 키웠으니 이제 집을 떠나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시기인 것이다. (p. 시 86/ 론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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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박호순미장원』에서/ 2020. 1. 22. <시선사> 펴냄

  * 이명/ 2010년『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2011년《불교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분천동 본가입납』『텃골에 와서』등, 2018년 e북 『초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