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빛나는 저녁 외 1편
윤석호
빛을 섞으면 환해집니다
하늘의 것이니까요
색을 섞으면 까매집니다
땅의 것이니까요
빛은 하늘로 와서 색을 만들어내지만
아무리 색을 뭉쳐도 빛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모래를 뭉쳐도 모양이 될 수 없듯이
한 번 흩어진 마음은 아무리 뭉쳐도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시간을 이으면 영원이 됩니다
하지만 기억들을 불러 모으면
고스란히 아픔만 남습니다
소중한 것은 쉽게 깨지고
그 가장자리는 왜 그리 날카로운지
그래도
아파했던 그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영원에 닿아 있었지요
영원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니까요
해가 방금 지고
거리의 불빛이
새롭게 빝나는 저녁입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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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다 무너지는 것들에 대하여
버틴다는 말을
무너졌다는 말로 결말지을 수 있나
꽃 피면 할 수 없이
화려함으로 버텨야 하고
새들도 한 음절의 노래로
하늘을 버티며 날아간다
쭈그러진 아버지가
홀로 누워 생을 버티는 동안
아버지의 구두는 허기로 벌어진 입을
적막으로 버티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버틴다는 동사의 목적어를 물어볼 수 있나
막 떨어진 낙엽을 들여다본다
이렇게 곱고 섬세한 잎들도
때가 되면 가지를 놔준다
목련도 미련처럼 보이기 전에
스스로 꽃의 목을 자른다
사랑조차도
견디는 일이란 것을 알아차린 듯
어둠 속 별 하나
스스로를 화장하며 별똥별로 지고 있다
버티던 것들만 무너질 수 있다
세상의 하루를 담담히 버텨 내고
해가 벌겋게 서쪽으로 무너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가 지워진 기억 몇 개만
차갑게 밤하늘에 남을 것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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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4인칭에 관하여』에서/ 2020. 2. 1. <시산맥사> 펴냄
* 윤석호/ 2014년《부산일보》신춘문예 & 2011년 미주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 2010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상, 2008년 캐나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상, 시마을 동인, 문협 미국 워싱턴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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