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의 지형도 외 1편
이서화
흰 연기는 공중의 뒤늦은 촉수다
늦가을 하늘 밑이란
고요하게, 그러나 난폭하다
아버지 논둑에 불 놓는다
불은 두 가지의 흔적을 남긴다
작은 불꽃이 뛰면 큰 불길도 같이 뛰고
득달같이 몰려드는 바람으로
큰불은 순식간에 찢어져 번진다
불길도 경계가 있어 들불은 들에서 꺼지고
산불은 또 산에서 꺼져야 한다
날아올랐던 연기 뭉치들
논둑에는 방향을 잃은
연기를 따라잡지 못한 시커먼 불의 지문이
저 논둑 끝끼지 이어져 있다
시커먼 지형도와 흩어지는 지형도는
알고보면 다 폐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잔불까지 사그라지길 기다리던
아버지가 일어서고
귀밑에 숨겨 둔 흰 연기 몇 올 보였다
삼십 년도 훨씬 전 어느 가을이었고
여우가 언덕을 넘는 저녁이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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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에 대하여
원주 중앙시장 골목,
전을 부치는 솥뚜껑은 어쩌면 저렇게 무심한가
메밀전 배추전 미나리전 감자전
서로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 묽은 반죽 속에 고작 배춧잎이나
파 몇 대궁이 그 얇은 한 장의 힘인 것을
한참을 서서 지켜보았다
고도의 기술이란
다름 아닌 단순하게 손 놀리는 무심함이라는 것
진동하는 냄새의 끝엔
무심한 손끝이 붙어있다는 것
찢어지지 않게 얇게 무치는 기술에도
한쪽을 익히고 그 익은 쪽의 힘으로 뒤집는 일
모난 곳 없는 동그란 모양
파치도 없이 부쳐내는 여자의 근심 한 장이거나
산전수전 끝의 달관이다
전 부치는 냄새는 문득, 이라는 말
오래된 식욕을 불러오는 냄새 근처엔
비 내리는 날의 처마 밑 기름 끓는 소댕이*가 있다
들러붙는 힘으로 익거나,
또 잘 뒤집히는 무삼함처럼
올 장마도 시작이다
-전문-
* 소댕이: 솥뚜껑의 강원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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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낮달이 허락도 없이』에서/ 2019. 12. 24. <시작> 펴냄
* 이서화/ 강원 영월 출생, 2008년『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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