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다
박영녀
몰티즈의 유리알 같은 검은 눈에 손가락을 넣는다
5살 뭉치를 찾는 안내문
찢어진 청테이프에 붙어 흔들린다
버스 안내 표지판이 하나둘
지나온 하루의 노선표를 지우고
붉은 글씨로 차고지 대기중으로 떠 있다
중동역 밤의 귀퉁이
서 있는 내 그림자 삐뚤거리며 길어진다
가면 다시 안 올 듯
낡은 승용차 꽁무니를 보이며 사라진다
멀리 펠리스카운티 아파트
점점이 흩어진 불빛이 어둠 속으로 줄어든다
찬바람이 겨울 모퉁이로 몰아세우는 거리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며 뒤척인다
몇 권의 시집
시린 어깨에서 가방끈을 끌어 내린다
막차는 어디까지 온 걸까
어둠과 교통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손이 축축해온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안부를 묻는다 나에게
-전문-
해설> 한 문장: "버스 안내 표지판이 하나둘/ 지나온 하루의 노선표를 지우고" 이제 막차만이 남은 시간, 시인은 홀로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기다리는 중동역 근처의 풍경은, "가면 다시 안 올 듯" 사라지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점점 불빛마저도 "어둠 속으로 줄어"들고 "찬바람이" 거리를 "겨울 모퉁이로 몰아세우는" 풍경. 이 사라짐만이 이루어지는 차가운 시공간을 시인은 "시린 어깨에" 걸친 가방 속 몇 권의 시집으로 견디며 막차를 기다린다. 그에게는 시만이 이 찬바람 부는 텅 빈 세계에서 삶을 지속시키며 기다림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 "바스락거리"는 "마른 나뭇잎"처럼 메마른 '어둠'의 공간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교통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손이 축축해"지기 시작한다. 어떤 따스한 온기가 몸 안으로부터 올라오고 물기가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의 마지막 행은 그 온기가 자신에게 "여기까지 잘 왔다고 안부를" 묻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로부터 생겨날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서 시인의 자신에게 건네는 안부인사가 퍽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세계'를 등장시킨 시편들을 읽으면서 어떤 위태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나아가 위의 시는 이 차가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우선 따스하게 대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필자에게 제공해줬다. 그래서인지 위의 시를 읽으면서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시집을 읽고 있는 독자들 역시, 필자가 느낀 위안과 온기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 맏는다.(p.141-142) (이성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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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아이스께끼』에서/ 2019. 12. 5. <한국문연> 펴냄
* 박영녀/ 2015년『시에』로 등단, 공저『프로방스에 끼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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