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배추밭/ 이서화

검지 정숙자 2020. 1. 18. 03:12

 

    배추밭

 

    이서화

 

 

  배추밭을 지나면 곤충 사육장이 있다

  예전엔 동네에서 가장 낡은 집이었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세상의 설명이

  붙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계절이 있다

  배추밭 위를 날아다니는 곤충

  원을 그리듯 날다

  낡은 집 쪽으로 사라졌었다

 

  집 없는 존재들은 모두 객사하는 것일까

  혼자 사는 노인이 죽은 지난봄은

  딱히 마음에서도 별일이 없었다

  별일을 숨기는 봄이 지나갔었다

  그 후 마을엔 곤충들이 부쩍 늘어났다

  생전 처음 보는

  모두 조용한 곤충이었다

 

  죽음을 가만 놔두면 다 날아간다

  죽은 사람은 날아가고

  무거웠던 것들만 남는다

  죽음은 꿈이 많다

 

  봄에 죽어 여름에 노인을 묻었다

  배추밭 근처였고 배추밭은

  마을에서 가장 추운 밭이다

  어느 계절은 설명할 수가 없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배추밭을 제 집처럼 일구던 노인이 객사했다. 혼자 살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철저하게 익명으로 가라앉았으며, 주어가 없는 죽음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달라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하루는 어제와 다르고, 마음이 가벼울수록 뒷목을 내리누르는 힘은 무거웠다. "별일을 숨기는 봄이 지나"가고 있다. 봄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수록 이상한 일들이 자꾸만 뒷목을 붙잡았다. 노인이 묻힌 배추밭에는 그 누구도 얼씬하지 않았고, 차츰 생전 처음 보는 곤충들이 부쩍 늘어났다. 곤충이라 하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조용한 그늘과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곤충에 집중했다. 곤충이 일어서고 날아다니며 드나드는 구멍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객사한 노인의 몸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더운 날로 접어들면서부터 몸의 부패는 가속되었다. 사람들이 노인을 발견했을 때는, 죽음조차 다 날아가 버린 후였다. "죽은 사람은 날아가고/ 무거웠던 것들만 남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생애를 모두 꿈으로 바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아주 멀리 보내기 때문이다. 삽질하던 사람들이 봉분을 밟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자국은 노인에게 다시는 사람으로 살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노인은 봄에 죽었고 여름에서야 배추밭 근처 어디에 묻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곳을 바라보거나 지나가지 않으니, "배추밭은/ 마을에서 가장 추운 밭"이 될 수밖에.(p.134-135)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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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낮달이 허락도 없이』에서/ 2019. 12. 24. <시작> 펴냄

  * 이서화/ 강원 영월 출생, 2008년『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