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가로수 외 1편
송연숙
가로수 아래 누군가 내다 버린 사각 거울
방전된 오후가 투영된다
전기공사 트럭이 골똘하게 전선을 싣고 거울 속을 지나간다
얼룩말 무늬 티셔츠도 힐끗, 지나간다
나도 지나간다
그 거울에
가로수 우듬지 새겨진다
푸른 화석의 줄기가 동맥처럼 빠르게 맥박친다
운명은 저렇게 우연하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눈동자 같은 나뭇잎이
무중력 거울 속에서 떨고 있다
마음 가는 대로 갈 수 있는 사랑, 얼마나 있겠는가
바람의 인연인 줄 알면서
마음대로 뽑아내지 못하는 사람
거울 속에서 아른거린다
이 또한 맑은 눈을 뜨고 지나가야 하겠지만
문득, 흰 구름
가로수를 건너가기 시작한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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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방
거울 속의 나는 실상일까, 허상일까
수세미처럼 구겨져 아침의 벽에 매달리는 얼굴
무게를 잃는다
오목거울이 내 몸을 깎아낸다
기울어진 나를 담는다
무한량無限量의 세상을 담고도 저토록 가벼워
들어가기만 하면 말끔하게 무게를 마셔버린다
무게 없는 육체라니, 유리벽 뒤 저 세상은
전생과 후생, 그 어느 쪽일까
그 어떤 죽음처럼 차가운 촉감이 손끝에 닿는다
칼라사진처럼 지나가는 시간의 터널
거울 밖의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갈아입은 수의처럼
나를 확인하고,
나를 숙주로 살아가는
저 세상으로 들어가 도화꽃잎 몇 개 피어나기도 하는
뚜껑 덮으면 사라지는
저 무변광대無邊廣大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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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측백나무 울타리』에서/ 2019. 8. 15. <시와표현> 펴냄
* 송연숙/ 강원도 춘천 출생, 2016년『시와표현』으로 등단, 2019년《강원일보》신춘문예 &《국민일보》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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