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양균원
붉은
유리 조각이
날 잡아당긴다
깨진 것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은 적이다
깨진 가장자리에서
빛이 화살을 날린다
깨져 날이 선 것
둥지를 떠나 예각이 드러난 것
그리하여 둥글게 마모되어 가는 것
부르는 대로 불리는 것이
사물의 운명이다
네 잎 클로버는 책 속에 버려졌다
이제 다가갈 수 있다
누군가의 손바닥에
뭐냐고 물을 수조차 없는 아름다움으로
놓일 수 있다
외론 책방의 꽃병이었는지
성당 색유리에 조형된
막달라 마리아의 손등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산산조각 나기 전은 없다
날 선 기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겨울 바다 모래톱에 비죽 솟아 있는
유리 조각, 붉은
당김
-전문-
해설> 한 문장: 깨진 것은 날이 서 있다. 그러나 상처의 예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치유의 둔각으로 진화한다. 꿈은 상처와 함께 그 예각을 잃어 가고 "부르는 대로 불리는" 운명을 따라간다. "네 잎 클로버"마저 책 속에 갇혀 잊힌다. 그렇지만 상실에서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예각을 잃음으로써 화자는 누군가의 손바닥에 안전하게 얹힐 수 있다. 상처 주지 않고 그럼으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상처를 안고 그 예각을 시간의 모래에 문질러 닳게 함으로써 이제 "뭐냐고 물을 수조차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모래톱에 비죽 솟은 유리 조각의 그 닳고 닳은 둔각이 화자에게 삶의 지혜를 전달하고 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외로운 책방지기였거나 막달라 마리아였거나 상관없다. 상처를 잊고 오늘을 맞이하라는, 유리 조각이 붉게 화자를 끌어당기면서 속삭이는 말이 들린다.(p.139-140) (전해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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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집밥의 왕자』에서/ 2020. 1. 20. <파란> 펴냄
* 양균원/ 1960년 전남 담양 출생, 1981년《광주일보》& 2004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허공에 줄을 긋다』『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연구서『1990년대 미국 시의 경향』『욕망의 고삐를 늦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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