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나무와 쇠 외 1편/ 이학성

검지 정숙자 2020. 1. 12. 00:48

 

 

    나무와 쇠

 

    이학성

 

 

  언제부턴가 나무는 알고 있었다. 연장을 든 건장한 사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그래서 나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곤 가만히 움켜쥐고 있었던 흙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침내 덤불을 헤치고 사내가 나타났을 때, 나무는 허리를 곧게 폈다. 사내의 노동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반듯한 허리로 사내가 휘두르는 도끼를 받았다. 나무의 허리는 무르고 부드러웠다. 사내의 어깨는 딱딱하고 억셌다. 하지만 딱 한 번 나무는 저항했다. 단단히 이를 악물고 벌목꾼의 도끼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벌어진 상처에서 하얀 피가 흘렀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핏물이 발목을 적시는 것을 나무는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것 말고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태생적으로 분노와 적의는 소유하지 못한 것. 드디어 쿵 하고 그가 쓰러졌을 때, 거친 숨을 거푸 몰아쉬던 사내는 연장을 거두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렇게 한 그루가 스러지도록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저들이 숲을 이루며 무수한 생명을 품고 어르는 동안, 우리는 벼리고 벼린 끝에 뾰족하고 날카로운 쇠붙이를 만들어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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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스런 항로

 

 

  겹겹의 난관이 앞을 가로막았다.

  쉴 새 없이 위기들이 덤볐으나 기지가 넘쳤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리라.

  세이렌들의 노래는 거의 치명적.

  현혹되는 순간 모든 꿈이 수포가 되어 사라지리라.

  함정에 걸리더라도 배를 돌릴 수는 없다.

  빠져나갈 길은 오직 협곡뿐.

  밀랍을 녹여 선원들의 귀를 막았다.

  중앙 돛대에 자신을 결박하고

  안간힘을 다해 노 저어가라 명령했다.

  하지만 무사히 통과한다 해도 이타카는 까마득히 멀었다.

  몇 번의 고비가 발목을 더 붙들 것인가.

  그래도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했다.

  거대 자연과 신비로운 힘에 당당히 맞선 최초의 인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이성을 믿었다.

  그것이 험악한 바닷길을 헤쳐가게 했다.

  잠 안 오는 깊은 밤,

  그가 몰아간 짙푸른 바닷길을 떠올린다.

  열흘의 아홉 밤은 거의 그렇다.

  닿았으리라 거의 닿았으리가 고집스레 잠을 청한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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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늙은 낙타의 일과』에서/ 2019. 11. 11. <시와반시> 펴냄

   * 이학성/ 경기 안양 출생, 1990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여우를 살리기 위해』『고요를 잃을 수 없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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